연세차내과의원 개원 [24년 봄호]

편집부

news@ksnnews.or.kr | 2024-03-04 17:14:27

바른 가치 옳은 믿음, 기본에 충실한 진료

차민욱 / 연세차내과의원 원장

“안녕하십니까, 대한신장학회 선후배 여러분. 모두 평안한 하루하루를 보내고 계시는지요? 저는 2020년 12월 10일 제주시 외도일동에 개원한 차민욱입니다. 삼無의 섬 제주에서 첫발을 내딛고 어느덧 개원 4년 차가 된 저의 이야기를 KSN NEWS를 통해 인사드릴 수 있게 되어 감사합니다.”

연세차내과의원 차민욱 원장

신장내과? 신장내과!

유리 몸에 까칠한 성격을 가진 환자. 지난 2013년 전공의 1년 차 시절, 내과 왕초보 입문자였던, 저의 머릿속 신장내과 환자에 대한 이미지였습니다. 아시는 분은 아시겠지만, 과거 세브란스병원 내과 전공의의 근무 강도는 손꼽히는(?) 정도였고, 군필 후 늦은 수련 중이던 저는 체력적으로 힘든 나날의 연속에서 향후 세부 전공으로 이러한 성향을 보이는 환자를 매일 진료하는 신장내과를 생각한다는 것은 선택지 밖의 답이었습니다.

시간이 흘러 2013년 12월. 전공의 1년 차 마지막 일정으로 신장내과 근무를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신장내과 환자들은 보통 겨울철에 위기가 많이 찾아옵니다. 가슴에 열정을 가지고 배움에 급급하던 제가 감히 환자들에게 의사로서 할 수 있는 게 많지 않던 시절 병원에서 아무리 밤샘을 하고 열과 성을 다하여도 지키던 환자가 예기치 않게 나빠지는 일이 생기면 그날은 몸이 고단하더라도 뒤척이다 다시 병원에 가는 일도 있었습니다.

내과는 저에게 벅차다고 생각할 때쯤 제 은사이신 강신욱 교수님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강신욱 교수님은 진료에 임하실 때 환자들의 증상 표현 하나하나에 세심히 귀 기울여 주시고 자세히 진찰하여 시의적절한 검사와 명쾌한 판단에 따른 정확한 처방을 내리셨고 그 결과 하루하루 좋아지는 임상 경과를 옆에서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그런 모습은 제가 향후 임상의로서 진료의 방향성을 설정할 수 있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고, 많은 고민 끝에 세부 전공으로 신장내과를 선택하게 되었습니다. 돌이켜 보면 아마 제 인생에서 가장 잘한 선택이 아닐까 싶습니다. 매우 힘들었지만, 의미가 깊었고 잘 배워서 나온 지금, 신장 분야 전문가로서 보람과 긍지를 느끼며 성실히 진료에 임하고 있습니다. 

삼多도 제주 정착 아직 멀었수다!

저는 부산에서 태어나서 고등학생 무렵까지 그곳에서 자랐습니다. 소중한 것은 떠난 후에야 깨닫는다고 해야 할까요? 서울을 마냥 동경해서 올라온 저는 의대생 시절을 거쳐 공중보건의 그리고 대학병원에서의 수련 과정을 거치며 바다 없이 살다 보니 향수병처럼 바다에 대해 그리움이 커져만 갔고 이 향수는 저를 2018년 3월 제주에 입도하게 했습니다.

제주는 저에게 그리 낯선 곳은 아니었습니다. 예과 1학년 시절 학과 동기들과 자전거로 제주 일주를 하면서 제주에 처음 방문하게 되었는데 고향인 부산과 닮은 바다가 어느 곳에서도 잘 보이고 시원한 바람이 정말 기분 좋게 느껴졌습니다.

그 후 지친 삶에 휴식이 필요할 때면 시간을 내서 여행객 신분으로 제주를 방문하기도 하였습니다. 수련의와 전공의 때는 바쁜 나날의 연속이라 그러지는 못하였지만, 세브란스병원과 모자병원 관계인 제주시 소재 모 종합병원에 파견 근무를 해마다 나오기도 하였습니다. 

2018년 3월 많은 고민 끝에 수련병원을 나와 진료과장으로 제주 시내 모 종합병원에 근무하게 되었습니다. 처음 회진 때 환자들이 제게 질문하였던 공통 관심사는 ‘얼마나 제주에 있다가 육지에 가십니까?’ 이었습니다. 사실 제주에 있는 대다수 병원에서는 안타깝게도 근무하는 의료진이 이르면 몇 개월 혹은 1~2년 이내로 제주에 적응하지 못하고 다시 육지로 돌아가게 되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제가 근무하였던 병원 또한 개원 6년 차였음에도 제가 4번째로 근무하게 된 신장내과 의사였습니다. 오래 투석 받아온 환자에겐 잠시 스쳐 지나가는 사람 정도로 여겨지는 것은 어쩌면 당연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한편으로는 안타까웠습니다. 선뜻 앞으로 제가 평생 투석 치료를 잘해드리겠다고 말씀드리지는 못했습니다. 그저 묵묵히 진료로 보여드리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시간이 흘러 하루 5명 남짓이던 외래 예약 일정이 저를 믿고 찾아오는 환자가 생기면서 어느덧 채워지고 월평균 투석 건수도 많이 증가하면서 이른 나이에 진료부장이라는 보직도 맡게 되었습니다. 진료만 하기에도 벅찼지만, 병원 진료에 필요한 행정절차 중 불필요한 부분이나 개선이 필요한 병원 시스템에 대하여 의견을 제시하고 실제로 개선되면 보람도 많이 있었습니다. 

그러던 중 갑작스럽게 코로나19가 찾아오면서 사고의 변환점을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진료부장으로서 코로나19 초창기 원내 감염 전파를 막기 위하여 최선을 다하였습니다. 감염내과를 전공한 동기에게 의견을 물어보기도 하고, 다른 병원의 사례를 벤치마킹도 하며, 내원객 동선 분리, 선별진료소 설치, 의료진 스케줄 배분 및 원격진료 설치 등 여러 아이디어를 제안 및 실행하며 열정을 쏟았으나 그 열정만큼 허탈감도 커지는 일들이 제 의지와 다르게 많이 일어났습니다. 그리고 많은 고심 끝에 개원 준비를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연세차내과의원

저에게 주어진 시가능 단 2개월 남짓이었습니다. 이전 병원에 신의를 지키고 싶었고, 환자들에게도 남은 시간까지 최선을 다하겠다는 생각에 개원 준비를 미뤘기 때문입니다. 개원 첫 주에는 시설업자가 잠적하는 바람에 냉난방 시설의 설치가 완료되지 않아 추위 속에 진료한 적도 있었고 병원 간판도 개원 1개월이 훌쩍 지나서야 설치를 완료해서 환자들이 병원 간판이 왜 없냐고 물어봤던 일도 있었습니다. 

연세차내과의원 투석실

개원 4년 차인 지금 저는 여전히 작은 진료실에 앉아 환자분들과 소통하며 잘 지내고 있습니다. 저에게 언제 육지로 가냐는 환자는 이제 없어진 지금 겨울철만 되면 제 진료실에는 감귤이 한가득 있습니다. 진정한 제주도민은 귤을 사 먹지 않는다며 오는 환자마다 조금씩 귤을 주고 갑니다. 앞으로도 저는 이곳 제주에서 변함없는 바른 가치와 옳은 믿음으로 기본에 충실한 진료를 이어가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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