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피엔솔로지: 호모사피엔스가 지구의 지배종이 될 때까지의 모든 역사 [24년 봄호]

편집부

news@ksnnews.or.kr | 2024-03-05 11:13:51

송준호 / 인하대학교 인하대병원 신장내과

아프리카 대륙에 발원한 한 줌의 집단이 지구의 지배종으로 부상하게 된 과정을 생물학적 관점에서 서술한 빅 히스토리. 의대 교수인 저자가 의학은 물론이고 인류학·심리학·사회학 등 다양한 학문을 넘나들며 호모사피엔스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조망한다(한겨례 2023, 7.7).

도서 <사피엔솔로지>는 어떤 내용? 

<사피엔솔로지>는 인류 역사를 톺아 보는 빅 히스토리 같은 책입니다. 600만 년 전 아프리카의 사바나에서 시작한 우리 종이 지구의 지배종으로 거듭나는 과정을 생물학적, 의학적 관점에서 다룹니다. 생물학 버전의 <사피엔스>라는 서평이 있었는데, 그게 가장 책을 잘 설명하는 것 같습니다. 시간을 따라 총 7장의 연대기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사피엔솔로지>라는 제목은 현생 인류를 지칭하는 ‘사피엔스’와 학문을 뜻하는 ‘-올로지’를 합친 조어입니다. 책의 부제처럼 ‘호모사피엔스가 지구의 지배종이 될 때까지의 거의 모든 역사’를 기술적, 의학적 관점에서 통섭적으로 다루었다는 뜻으로 붙인 이름입니다.

실은 책의 내용을 하나로 묶는 제목을 찾느라 고민하던 중, 어느 날 비틀스의 곡과 역사를 모아 발간한 90년대 앨범 <앤솔로지(Anthology)>가 눈에 띄었습니다. 거기서 힌트를 얻어 인간의 역사를 모은 선집이라는 의미에서 ‘사피엔스+ 앤솔로지’라고 부르면 되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 중의적인 뜻이 있습니다. 

책의 구성은? 

사피엔솔로지 '목차'

인류의 진보 과정을 장마다 관점을 바꾸며 다루었습니다. 1장<구별: 독특한 생물의 탄생>은 아프리카 열대우림에 살던 한 유인원 그룹이 형제종과 결별하고 아프리카 대륙을 벗어나는 이야기를 그립니다. 2장<각성: 깨어난 정신>은 우연과 창발의 요소가 섞이며 우리의 뇌에 기적적으로 마음과 지능이 나타나는 과정을 담고 있습니다. 3장<결속: 성과 양육과 협력>에서는 우리의 성(性)과 양육의 본능이 어디에서 기원했는지, 그리고 이기적인 본성 가운데에서 어떻게 인류 최대의 강점인 협력이 나타나게 되었는지를 알아봅니다. 

4장 <구축: 새로운 생태계>부터는 역사의 시대입니다. ‘혁신 본능’과 ‘통제 욕구’를 가진 인류가 지구를 장악하고 개조해 나가는 과정을 그렸습니다. 5장<해독: 판도라의 상자>와 6장<초월: 역설계>는 생명의 비밀이 담긴 유전자와 우리의 핵심 역량인 뇌 신피질의 비밀을 우리가 어디까지 알아냈고 어느 수준까지 조작할 수 있는지 알아봅니다. 그리고 원시적인 생명체가 제작되고, 세상과 신체의 경계가 희미해지는 현재 기술 세계를 그립니다. 7장<위기: 실존의 위협>에서는 호모 사피엔스의 성공이 불러온 전 지구적 위험을 되짚어 봅니다.  

책을 쓰게 된 동기는? 

어렸을 때는 <코스모스>나 <털 없는 원숭이>, 조금 더 성장해서는 <이기적인 유전자>나 <마음의 역사> 같은 과학적 담론의 책에 묻혀 살았습니다. 언젠가는 나도 이런 담론을 써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개인적으로 <사피엔솔로지>는 이런 책들에 대한 헌정사입니다. 책 속에 감사와 존경의 뜻으로 이들 책에 대한 인용도 많이 들어있습니다.

처음 구상할 때는 의학에 여러 분야를 접목해 인간의 생물학적 특성을 다뤄 보려 했습니다. 우리는 왜 정해진 수명을 살게 되었나, 왜 성행위를 하나, 질병의 기원은 무엇인가, 왜 지금 같은 첨단 시대에 메르스나 코로나 같은 신종 감염병들이 도래하게 됐나? 이런 질문을 다루는 내용의 단행본을 만들려 했습니다. 

그렇게 집필 계획을 세우고 자료 수집을 시작하며 원고 초안을 구상하던 중인 2020년 초, 갑자기 COVID-19 팬데믹이 터졌습니다. 대학과 병원에서 쏟아지던 번잡한 과외 업무들이 정리되면서 갑자기 개인 시간이 좀 더 생기고, 생긴 시간만큼 자료 수집 범위가 점점 늘어났습니다.

수렵·채집 석기시대로 잡았던 시작점은 두 발 직립보행을 시작한 시점까지 거슬러 올라갔고, 인간 게놈 프로젝트와 맞춤 의학 시대에서 끝내려 한 마지막 지점은 인공지능과 마인드 업로드, 행성 간 여행으로 확장되었습니다. 범위가 걷잡을 수 없이 늘어나면서 처음 집필을 시작했던 부분, 수명과 질병의 기원을 다룬 부분은 별도의 책으로 다루기로 마음먹고 스핀-오프한 원고들만 모아 지금의 책을 만들었습니다. 초기 원고는 지금 다시 다듬고 있습니다. 다음 책은 그 원고로 발간될 것 같습니다. 

어떻게 의사이면서 이런 책을 쓰게 되었나? 

몇 가지 특별한 경험이 이런 책을 내도록 한 것 같습니다. 그중 한 축은 미국 연수 경험입니다. 2008년 생체인공신장(Bioartificial kidney)을 배우기 위해 미시간 대학의 데이비드 흄(David Humes) 교수에게 갔었는데 그곳은 생체 인공신장뿐 아니라 인공심장, 인공태반 등 요즘으로 치면 ‘트랜스 휴머니즘’적 연구의 요람이었습니다. 그런 것을 보면서 사고의 틀이 조금 바뀐 것 같습니다. 

또 ECMO의 아버지라 불리고, 당시 Cytosorbent사의 CTO이기도 했던 로버트 바틀렛(Robert Bartlett) 교수님의 옆방을 쓰게 되었는데, 가끔 함께 점심을 먹으면서 그 해 <마음의 조각(Piece of Heart)>이라는 대중 소설을 출간하면서 재미있었던 이야기를 얼마나 자랑하시던지, 저도 언젠가는 대중서를 한번 내 보리라 생각도 하게 되었습니다.  

연수 중 또 다른 계기도 있었습니다. 그해 미국은 금융위기로 주식 시장이 폭락했습니다. 사람들이 주식을 팔지도 못하고 그대로 막대한 손해를 떠안았는데, 옆 건물에 이런 행동을 functional MRI로 연구하는 그룹이 있었습니다. 여기 친구들이 막대한 손실이 예상될 때 반짝반짝 빛나는 공포 중추의 MRI 사진을 보여주었습니다.

그러니까 석기 시대 이전에 새겨진 뇌 속 변연계의 생존 반응이 뱀을 만난 쥐처럼 주식을 팔지 못하게 했다는 겁니다. 가장 계산적이고 자본주의적인 거래조차 생물학적 한계를 벗어나지 못한다는 점에 흥미를 느끼고, 취미 수준에서 진화심리학, 행동경제학 같은 것들을 들여다보게 되었습니다. 

또 다른 축은 병원 업무로 에티오피아, 방글라데시, 몽골 같은 저개발 국가를 돌아다니며 겪은 경험입니다. GDP가 세계 최하인 이곳 오지 사람들은 신발은 없어도 모두 스마트폰을 하나씩 쥐고 다녔습니다. 특히 인류의 발원지인 에티오피아 부족민들은 수렵 채집인의 모습을 하고도 스마트폰을 들고 다녔습니다.

그 모습을 보면서, 스마트폰이 직립보행, 돌도끼, 농기구, 나침반, 석탄과 석유와 같이 진화의 역사를 바꾸는 주춧돌이 아닐까… 그런 생각을 하면서 IT와 4차 산업혁명 분야에 대한 자료들을 관심 있게 읽어 나갔습니다. 그런 것들을 모아 팬데믹 5년간 정리한 것이 <사피엔솔로지>입니다.  

책에서 독자들이 읽어 보기를 권하는 내용은? 

독자평을 보면 인류의 기원을 다루는 전반부에 많이 재미있어하시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이 책의 정수는 인류의 위기와 미래를 다루는 후반부에 있습니다. 히로시마에 원자폭탄을 터뜨리고, 체세포 복제를 하고, 유전자 편집 아이를 만들고, 땅속에 묻혀 있던 탄소 연료를 꺼내 지구 지표면 온도를 올리면서 인류는 스스로 위험한 존재가 되었습니다.

지능, 혁신 본능, 통제 욕구 등 아프리카 사바나를 배회하던 한 줌도 안 되던 보잘것없는 유인원 집단을 지구의 지배종으로 끌어 올린 특성, 다시 말해서 뇌에 새겨진 그 생물학적 형질이 이제는 부메랑이 되어 미래를 위협하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바이오, 나노, 전산 통신, 뇌과학 기술의 발전을 바탕으로 인간의 형태까지 바꾸려는 조짐도 있습니다. 우리가 지금의 모습을 유지할 것인지 스스로 만든 새로운 형태로 진입할 것인지 앞으로 50년 이내에 결정될 것입니다. 기술이 우리를 멸망시킬 수도, 우리를 구원할 수도 있습니다. 이제는 그것을 생각할 때가 되었다는 것이 <사피엔솔로지>의 핵심입니다. 

우리가 이런 위험을 피하고 다음 세기에도 존재할 수 있을까? 우리는 지금 새로운 시작 앞에 서 있는 것일까, 아니면 진화의 마지막 단계에 서 있는 것일까? 이런 것을 생각하시며 아서 C 크라크나 아이작 아시모프의 SF 소설을 읽듯 후반부를 읽어 주시면 꽤 재미있을 겁니다.  

꼭 들려주고 싶은 마무리 말씀은?  

책에 이런 구절 하나를 인용했습니다. 다윈의 말인데, ‘약간의 뛰어남이 승리를 가져온다’라는 말입니다. 무슨 뜻이냐 하면, 최초에 종이 가진 약간의 강점이 긴 진화의 시간을 이기며 그 종을 번성하게 하는 계기가 된다는 말입니다. 이 책은 이제 막 시작점에 있는 젊은 세대에게 그런 약간의 통찰력을 주려는 의도에서 쓴 책입니다. 

저희 대학도 그렇지만, 요즘 신장 학회의 젊은 교수들은 구세대 교수들이 잘 알지 못하는 빅데이터, 알고리즘, 인공지능, 유전체학, 생명정보학에 발을 들이고 있습니다. 고무적이고 환영할 만한 일입니다. 앞으로는 GNR, 즉 바이오, 나노, 로봇의 시대가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도 이 대열에서 우리 학회의 연구자들이 다른 분야의 연구자들보다 앞쪽에 있냐 하면 그렇다고 보기는 어려운 듯합니다. 그런 면에서 이 책이 우리 학회 신진 연구자들께 약간의 통찰을 주었으면 합니다.

이제 미래를 예측하는 것은 역사가 아니라 과학 기술 동향이 되었습니다. 예수나 마르크스 같은 사상가보다 스티브 잡스나 일론 머스크 같은 빅테크 기업가들의 한마디 말이 더욱 영향력을 행사하는 시대입니다. 앞으로는 이데올로기나 경제 이론보다 바이오, 나노, 정보, 인지과학, 이런 것들이 세상을 바꿀 겁니다.

하다못해 투자 분석가들도 기업의 재무제표보다 미래 기술 동향 분석에 더 매달리고 있습니다. 젊은 세대들이 그런 것들에 생각이 미치는 데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것이 <사피엔솔로지>를 쓴 저자로서 바람입니다.  


[ⓒ 대한신장학회 소식지.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WEEKLY HO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