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버드 의과대학 면역학교실 연수기 [25년 여름호]
편집부
news@ksnnews.or.kr | 2025-05-28 15:20:43
이하정 / 서울대학교병원 신장내과
Harvard Medical School, Immunology Department [Summer 2025 Issue]
English Summary
Dr. Ha-Jung Lee recounts her two-year research fellowship at Harvard Medical School’s Huh Lab. The lab focuses on microbiome–immune interactions related to autoimmune diseases, which Lee applied to nephrology. She describes hands-on experience in germ-free models and gut-immune axis experiments. Beyond science, she reflects on Boston’s biotech ecosystem, medical innovation culture, and the historic xenotransplantation case at MGH.
연수를 돌아보며
KSN NEWS에서 해외연수기에 대한 요청을 받고 생각해 보니, 연수 후 복귀한지 4개월 정도 지났을 뿐인데, 지난 약 2년간의 시간이 마치 전생 혹은 꿈결처럼 아득하게 느껴집니다. 이 연수기를 통해 다시 한번 소중한 경험으로의 여행을 떠나게 되는 것 같아 벌써 설렙니다. 소중한 기회를 얻을 수 있도록 물심 양면으로 도움 주신 서울대학교병원 신장내과 동료 교수님들께 감사의 인사를 드리는 것으로 시작해야 할 것 같습니다.
특히 예상치 못한 의료 사태로 인해 그 어느 때보다 심리적으로도 육체적으로도 힘든 시기를 보내셨을 2024년에 함께 하여 조금이나마 보탬이 되어드리지 못해 송구한 마음이 컸습니다. 돌아와 전공의 없는 ‘new normal’을 경험하게 되니, 2024년이 얼마나 혼란스럽고 어수선했을 지 감히 예상하기도 어려운 것 같습니다. 다시금 진심으로 감사의 인사를 올립니다.
Huh Lab에서의 연구 경험
저는 2023년 3월부터 2024년 12월까지 22개월 동안 미국 동부의 매사추세츠주 보스턴에 위치한 Harvard Medical School Immunology Department의 Jun Huh 교수님 연구실로 장기 연수를 다녀왔습니다. Huh lab은 마이크로바이옴과 자가면역질환 간의 복잡한 상호작용을 분자 수준에서 규명하고자 하는 최전선의 연구가 이루어지는 곳으로, 최근 빠르게 확장되고 있는 장내 미생물과 면역계 간의 네트워크 이해를 기반으로 다양한 전임상 모델을 활용한 기전 연구를 수행하고 있습니다.
최근 신장학 분야에서도 IgA nephropathy나 lupus nephritis와 같은 자가면역질환의 발병 기전에서 마이크로바이옴의 역할이 주목받고 있으며, microbiota–immune axis를 이해하는 것은 향후 정밀의학적 진단과 면역조절 기반 치료 전략 개발의 중요한 전제조건이 되고 있습니다. 특히, 이식 신장에서 관찰되는 거부반응 및 면역관용의 조절 기전, 그리고 면역 억제제의 장내 대사 및 상호작용과 관련하여, 장내 미생물군이 중재자(mediator)로 작용할 수 있음을 시사하는 다양한 연구들이 발표되면서, 그 임상적 의의가 더욱 중요해지고 있습니다.
연수 이전 한국에서는 IgA nephropathy, lupus nephritis, 그리고 신장이식 환자의 분변 검체를 이용한 metagenomic biomarker 연구를 수행하고 있었지만, 결과 해석과 검증에서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었습니다. benchmark할 만한 유사 연구실을 찾기 어려운 상황에서, 마이크로바이옴-면역 네트워크의 기초 연구를 배워보고 싶은 마음에 Huh Lab을 선택하게 되었습니다.
Huh Lab은 기본적으로 neuroimmunology 기반의 연구를 수행하는 곳으로, 신장 질환과는 직접적 연관이 없기에 연수지를 결정하는 데 고민이 많았습니다. 그러나 두 딸과 함께 남편 없이 생활해야 하는 연수 조건에서, 대중교통 접근성 및 생활 안전성이 확보된 지역을 찾다 보스턴을 염두에 두게 되었고, Biological Research Information Center (BRIC)을 통해 Huh Lab을 알게 되었습니다.
PI이신 Jun Huh 교수님은 한국에서 학부를 마친 뒤 미국에서 학위를 받고 Harvard Medical School 교수로 임용되신 분입니다. 당시 발표하셨던 임신 중 모체 장내 미생물이 Th17 세포 분화를 유도하고 생성된 IL-17A가 태아의 신경 발달에 영향을 미쳐 자폐 스펙트럼 장애와 연관될 수 있다는 보고와 장내 세균의 2차 담즙산(secondary bile acid) 대사가 면역세포 기능에 영향을 준다는 연구는 제가 하고 있는 연구와 접목 가능한 지점이 많다고 판단하여 누군가의 소개 없이 직접 연락을 드렸고, 다행히 흔쾌히 받아 주셨습니다.
연구실은 Longwood Medical Area 내 New Research Building 10층에 위치해 있으며, Microbiology and Immunology Department의 주요 연구실들과 함께 연구하고 있습니다. 이곳에는 Harrison’s Principles of Internal Medicine 저자인 Dennis Kasper 교수, 세계적인 면역학자 Christophe Benoist 및 Diane Mathis 교수의 연구실도 함께 있어, 활발한 학문적 교류가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Harvard Medical School은 20여 개의 부속 병원들과 협력하고 있으며, 최근에는 임상 현장에서 관찰된 현상을 기초과학적으로 재해석하는 reverse translational research도 활발히 시도되고 있습니다.
저희 연구실에서 진행한 fever effect 연구는 자폐 스펙트럼 장애 아동의 일부가 열이 날 때 증상이 일시적으로 호전된다는 일부 보호자들의 보고에 기반하여, 발열이 면역계 및 마이크로바이옴을 변화시켜 행동 증상에 영향을 준다는 가설에서 출발했습니다. 일부 보호자들만 경험한 소소한 현상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이 현상을 가볍게 넘기지 않고 귀 기울여 듣고 임상 연구로 확장해낸 의료진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K 의료현장에서 놓치고 지나갔을 중요한 관찰들이 많았을 수 있겠다는 반성을 해보기도 했습니다. 또한 임상의 귀중한 관찰을 과학적으로 풀어내고자, 기초연구실에서 환자 샘플에서 오믹스 분석을 수행하고, 전향적 코호트 구축을 적극적으로 제안하고, 임상 현상을 모사할 수 있는 in vitro 및 in vivo 모델을 창의적으로 설계해 나가는 일련의 과정이 매우 흥미로웠습니다.
제가 방문한 연구실이 신장 질환 관련 연구를 하는 곳은 아니었기 때문에, 제가 주도적으로 해볼 수 있는 프로젝트에 관한 고민이 많았습니다. 실험실 경험이 많지 않아, 기본적인 실험부터 직접 해보기로 하고 거의 12년 만에 파이펫을 직접 들고 시작해 보았습니다.
저희 연구실은 Harvard Medical School의 Gnotobiotic Core를 set up하는 단계부터 주도적으로 관여해 왔고, 한국에서 접하기 쉽지 않은 germ free 환경에서 gut-immune axis를 평가하여 질환 특이 마이크로바이옴 signature를 찾는 기존 프로젝트에 참여할 수 있는 기회를 얻을 수 있었습니다. 비록 세부 실험들에 참여하기는 했지만, 아마도 도움보다 방해가 많이 되었을 저를 매번 참을성 있게 기다려 주고, 이해해 주며 또한 많이 가르쳐 준 실험실 동료들 덕분에 다양한 경험과 고민을 함께 할 수 있었습니다.
연수 후반부에는 연구실의 배려로 lupus nephritis animal model을 만들어 보고, anaerobic bacteria를 키워보고, germ-free 환경에서 저희 환자 데이터에서 확인된 질환 특이 균주를 마우스에 transfer 하여 gut immune cell/metabolite의 변화를 보는 explorative work를 해보기도 했습니다. 하나하나의 과정이 늘 쉽게 지나가지 않았지만, 바쁜 진료 일정을 핑계로 한국에서는 실제 해보지 못했던 일들을 직접 해보면서 얻는 고민과 생각들은 저에게 귀중한 경험이 되었습니다.
Longwood Medical Area에는 하버드 의과대학뿐 아니라 부속 병원인 Brigham Women’s Hospital, Boston Children’s Hospital, Dana Farber Cancer Institute, Beth Israel Deaconess Medical Center 등 세계 유수의 기관들이 도보 10분 이내의 거리에 모여 있고, Massachusetts General Hospital, Massachusetts Institution of Technology 도 가까이에 있어 학문적 교류가 매우 활발하게 일어나고 있었습니다.
이미 한국에서도 잘 알려진 보스턴 바이오클러스터의 위력은 생각보다 대단하여 대학, 병원, 그리고 다양한 규모의 산업체들이 유기적으로 얽혀 다양한 협력 관계를 이루며 빠르게 진화해 나가고 있었습니다. 아카데미아에서의 도전적인 창업과 산업체에서의 깊이 있는 연구, 크고 작은 바이오테크 기업들의 긴밀한 관계가 어우러진 분위기에서 이러한 과정들이 매우 유연하고 효율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는 제도의 유연성, 그리고 Lab central 과 같은 supporting facility 들이 잘 갖추어져 있는 점들을 개인적인 교류들을 통해 직접 접할 기회들이 있었는데 매우 인상적이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최고의 바이오클러스터가 이루어지기까지 최근 약 20여 년의 시간 동안 과학의 발전과 진보를 위해 무수히 많은 실패와 좌절의 경험이 용인될 수 있는 민간 및 공공의 지원이 지속될 수 있는 문화와, 그 문화 안에서 진취적으로 역량을 발휘하고 싶어 하는 세계의 우수한 인재들이 모이는 환경이라는 점이 매우 부럽기도 했습니다. 특히 제가 머무르고 있는 기간 동안 Massachusetts General Hospital (MGH)에서 세계 첫 이종신장이식이라는 혁신적인 과정이 환자에게 이루어지는 경험을 간접적으로 하게 된 것은 이러한 맥락에서 매우 인상적이었습니다.
잘 아시는 것처럼 Brigham Women’s Hospital (BWH)은 1954년 세계 최초의 ‘성공적인’ 신장이식이 이루어진 병원입니다. 70년 후인 2024년 3월 16일, MGH에서는 62세 흑인 남성에게 돼지의 신장을 이식하는 사례가 있었는데, 당시 MGH 신장내과 의료진을 통해 상세한 상황을 들었던 기억이 납니다. 환자는 당뇨병성 신증에 의한 말기신부전으로 이식을 한차례 받았으나 오래 사용하지 못하였고 감작이 많이 되어 재이식의 기회를 고려하기 어려웠던 상황이었습니다. 그런데, 혈관 상태가 좋지 않아 vascular access의 문제가 반복적으로 발생하였고 이 때문에 자주 응급실에 왔기 때문에 MGH와 BWH의 전임의 선생님들이 대부분이 알고 있을 정도로 투석을 유지하기 어려웠다고 합니다.
이러한 환자에게 세계 최초의 이종 신장 이식을 권유한 의료진과 그것을 수용한 환자와 가족들, 그리고 이를 허용해 준 FDA 모두 쉽지 않은 결정을 하고 실행에 옮길 수 있었던 것은 보스턴의 이러한 분위기와도 무관하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환자는 결국 약 2개월 후에 cardiac arrest로 사망하였지만 이러한 결과에 대하여 누군가를 비난하거나 책임 소재를 묻는 분위기는 없었고, 첫 번째 이종 신장을 받은 용감한 선택을 한 환자에 대한 격려, 혁신적 치료를 시도해 준 의료진에 대한 감사, 그리고 개선을 위한 노력에 더 많은 관심을 갖는 분위기가 매우 인상적이었습니다.
이러한 시퀀스는 두 번째 이종 신장이식을 같은 병원에서 할 수 있도록 허용해 준 FDA의 결정으로 이어져 올해 초 이루어진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첨단 과학의 발전을 이끌어 온 이 사회의 저력을 다시 한번 실감하게 하면서, 동시에 우리가 서 있는 환경을 되돌아보게 하는 특별한 경험이 되었던 것 같습니다.
보스턴에서의 일상과 배움
보스턴은 일상인으로서의 삶을 즐기기에도 매우 좋은 곳이었습니다. 깨끗하고 안전한 거리, 외국인에게 호의적인 분위기에서 Asian으로 느끼는 불편감이나 거부감이 거의 없이 지낼 수 있었습니다. Public Education System이 정말 잘 갖추어져 있었고, 부모들도 건강한 교육에 관심이 많아 중학생으로 미국에서의 시간을 보낸 저희 두 아이들에게도, 학부모인 저에게도 인상적인 경험이었습니다. 독서와 글쓰기, 토론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악기 연주와 운동을 장려하는 건강한 환경은 매우 건강하지 못한 학교 급식에 대한 불만을 상쇄할 수 있을 만큼 부러운 것이었습니다.
보스턴은 음악으로도 유명한 도시여서 좋은 공연을 접할 기회가 많았습니다. Boston Symphony Orchestra와 조성진 님의 Ravel 연주, New England Conservatory의 유서 깊은 Jodan Hall에서 들었던 버클리 음대 학생들의 Rhapsody in Blue, Tanglewood Summer Music Festival 기간 동안 깊은 산속에서 밤 하늘의 별을 보며 잔디밭에 앉아 이제는 90세가 넘은 John Williams 할아버지의 지휘로 듣는 the Imperial March와 Yo-yo ma의 Schumann 등 황홀한 경험들을 종종 할 수 있었습니다. 유명한 피아니스트 임윤찬 님이 한번 보스턴을 방문해서, 설레는 마음에 큰마음을 먹고 좋은 좌석의 표를 예매해 두었는데, 마침 둘째 아이의 학교 오케스트라 공연 일정과 겹쳐져 눈물을 머금고 포기해야 했던 날은 아직도 큰 아쉬움으로 남습니다.
미술관이나 전시회도 정말 좋았는데, 2024년 Independence day에는 보스턴 미술관에서 한국 특별전으로 태권도 시범과 갤러리 안에서의 K-pop random play dance, 저도 잘 모르던 한국의 근대 역사 및 K-culture 관련 전시가 다채롭게 이루어졌고, 많은 현지인들의 관심을 받고 있는 것을 보며 자랑스러웠던 기억이 납니다. 기회가 될 때마다 아이들과 여행을 다녔던 때도 있었는데, 사계절이 뚜렷한 뉴잉글랜드 지역의 아름다움, Washington Mountain Auto road의 강렬한 스릴, 짙은 안개가 낀 Montauk의 등대, 눈 덮인 아이슬란드의 빙하와 깊은 밤 아이들과 보았던 오로라, Prince Edward Island를 가득 수놓았던 별들, Cape Breton의 해질녘 Skyline tracking이 많이 생각나는 것 같습니다. 무엇보다도 제 일상을 함께해 준 Newton의 고즈넉한 산책로가 자주 떠오릅니다. 우연히도 비슷한 시기에 저희 의과대학 입학 동기가 5명이 같이 보스턴에 머무르게 되어 정기적인 가족 모임을 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던 것도 저와 아이들에게 모두 소중한 추억이 되었습니다. 또 BWH에 연수를 오셨던 아산병원 김효상 교수님, 국제성모병원 문성진 교수님과도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었습니다.
배움의 여정, 그 이후
2년간의 보스턴 연수 경험은 제게 연구자와 임상의로서 새로운 경험과 시각을 갖게 해준 값진 시간이었습니다. 마이크로바이옴과 면역계의 상호작용에 대한 심층적 이해, 특히 분자 수준의 기전 연구와 임상 관찰을 연결하는 reverse translational research의 중요성과 어려움을 체감한 것은 귀중한 자산이 되었습니다. 비록 어려운 시기이지만, 보스턴의 혁신적 연구 문화와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도전 정신을 우리 연구 환경에서도 구현해 나가기를 희망합니다.
마지막으로, 이 모든 경험을 가능하게 해 주신 서울대학교병원 신장내과 교수님들과 Huh 교수님, 그리고 낯선 환경에서도 서툰 엄마의 이상한 요리들을 참아내며, 예민한 사춘기를 묵묵히 견디어 준 두 딸과 한국에서 홀로 외로운 시간을 견뎌내며 부족한 저를 지지해 준 사랑하는 남편에게 깊은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돌이켜보면, 많은 즐거운 일들은 우연히 시작되었습니다. 연수를 준비하시는 선생님들께 축하의 인사를 드리고, 익숙함을 벗어나 본질적이고 아름다운 것들을 찾아가는 소중한 기회가 되시기를 진심으로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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