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뜻한 봄과 함께 역사의 흔적을 찾아서 떠나는 봄나들이 [24년 봄호]
편집부
news@ksnnews.or.kr | 2024-03-05 12:41:58
오랜만에 화이트 크리스마스를 지낸 올겨울은 유난히 눈이 많이 내리는 느낌이다. 하얀 겨울왕국의 모습을 뒤로 하고 조금씩 따뜻해지는 봄기운이 느껴지는 시기다. 봄은 화려하고 예쁜 야생화들과 함께 초록 새싹들이 돋아나는 원기 왕성한 계절이다. 추위로 움츠렸던 몸을 활짝 펴고 대자연과 함께 선조들의 얼이 스며있는 수원화성 성곽길, 경주 사대부길, 문경새재 옛길로 여행을 떠나본다.
꽃들의 향연과 선조들의 풍류와 기개를 품고 있는 수원화성 성곽길
수원화성은 왕궁의 남부지역을 방어하기 위한 군사시설로 우리나라 성곽 건축 기술이 집대성된 곳이다. 비운의 사도세자로 잘 알려진 장헌세자의 아들인 정조대왕이 아버지에 대한 효심으로 묘를 화성 현륭원으로 옮기면서 만든 계획도시다. 1997년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었으며 현재는 화성행궁과 함께 산책과 관광 코스로 많은 사람의 사랑을 받고 있다.
봄의 상징인 벚꽃이 만개하는 시기에 맞춰 걸어보기로 하고 수원역으로 향한다. 옛날 경기도청 자리에서부터 미소를 머금은 얼굴로 꽃분홍의 나무들이 반겨 맞아준다. 초록 터널 안에서 봄바람에 날리는 꽃눈을 맞으며 동심으로 돌아가 꽃잎을 잡으려 애써본다. 갈림길에서 우측으로 성곽을 따라 내려가 팔달문으로 향한다.
차들이 다니는 대로 한가운데 웅장하게 있는 팔달문의 모습을 보니 당찬 느낌이다. 동남 각루를 시작으로 이어지는 성곽 담벼락 밑으로 따뜻한 봄볕에 피어난 예쁜 야생화들이 지나는 사람들의 눈길을 끈다. 성곽 중간중간에는 적을 감시하고 공격하기 위한 포루와 치성들이 불뚝불뚝 밖으로 튀어나와 있다.
창룡문에 다다르자 탁 트인 벌판에 화살 과녁이 눈에 들어온다. 과거 군사들이 무예를 연마하고 훈련하는 장소였던 연무대로 국궁을 체험해 볼 수 있는 곳이다. 군사가 안으로 들어가 적을 살필 수 있게 만든 망루의 일종인 둥근 모양의 동북공심돈 주변에는 여러 나라에서 온 관광객들이 사진을 찍으려고 북새통이다. 동북포루로 향하는 길에 만개한 벚꽃들 밑에서 등교하는 학생들이 교복을 입고 사진 작품을 연출한다.
밝은 표정과 해맑은 웃음소리에 주변이 모두 행복해지는 느낌이다. 벚꽃을 감상하며 발걸음 옮기니 화성의 명물인 방화수류정이 우리를 반겨준다. 군사를 지휘하는 지휘소이자, 주변 자연과 조화를 이룬 정자의 기능을 함께 하는 곳이다. “꽃을 찾고 버들을 따라 노닌다(訪花隨柳)”라는 뜻을 지닌 방화수류정은 보는 방향에 따라 다른 모습을 보여주는 독창적인 건축물로 평가받고 있다.
장안문 옆 북동적대에는 당장이라도 발사될 것 같은 화포가 적진을 향해 놓여있다. 현장학습을 나온 아이들이 신기한 듯 화포를 바라보며 열심히 적고 사진도 남긴다. 화서문으로 향하는 길에 멀리 팔달산 꼭대기에 서장장대와 어우러진 봄꽃의 풍광이 절경이다. 서장대로 오르는 길 한편 야생화 공원에서는 화성의 축조 현장을 작은 인형으로 만들어 보여준다. 선조들이 힘을 합쳐 서로 도와가며 다양한 기구를 이용해 성을 쌓는 모습이 생생하다.
마지막 고비인 돌계단을 오르고 또 오르니 정상에 우뚝 솟은 서장대가 모습을 뽐낸다. 사방 100리가 한눈에 보이는 이곳은 성곽 주변을 살피면서 군사를 지휘하던 수원화성의 지휘 본부다. 멀리 내려다보이는 성곽길 풍경을 감상하고, 소원을 빌어 보는 체험을 할 수 있는 오늘의 종착지인 효원의 종으로 향한다. 3시간여의 걷기 여행과 함께 이곳의 명물인 지동시장의 순대볶음을 먹으며 오늘의 일정을 마무리한다.
유서 깊은 선비의 고장에서 숲길 여행을 함께 즐기는 경주 사대부길
경주 화랑길은 찬란하고 자랑스러운 신라의 문화유산을 몸소 체험하고 가슴으로 느낄 수 있는 아름다운 길이다. 화랑길은 제1코스인 선덕여대왕길에서 10코스인 문노랑길까지 있으며, 8코스인 사대부(선비)길 코스가 있는 세심마을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옥산서원과 함께 150여 점의 보물을 보유하고 있는 유서 깊은 곳이다. 세심(洗心)은 한자어에서 볼 수 있듯이 도의 근본인 ‘마음을 닦는다’는 의미다.
KTX를 타고 신경주역까지는 두어 시간 남짓, 잠시 책과 함께하니 벌써 경주역이라고 알림이 뜬다. 오늘 일정은 마을 길을 걸으며 유서 깊은 곳과 경치가 아름다운 곳을 보고 공기 좋은 숲길의 맛도 조금 느낄 수 있는 짧지만 알찬 코스다.
독락당은 회재 이언적 선생이 고향으로 돌아와 지은 사랑채로 겉에서 보는 것만으로도 그 웅장함이 느껴진다. 뒤편의 계정숲은 소나무들과 함께 여러 나무가 어우러진 아름다운 풍광으로 피로를 모두 날려줄 것 같은 세상에서 가장 편한 쉼터의 느낌이다.
옆으로 흐르는 개울에는 관어대, 영귀대 등 신선들이 신선놀음하며 쉬고 있을 것 같은 너럭바위들이 보인다. 바위에 앉아 개울에 발을 담그는 상상을 하니 개울 옆 사랑채에서 사대부 선비들의 시조 읊는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마을 길을 조금 오르니 정혜사지 13층 석탑이 늠름한 모습으로 우리를 반겨준다. 이 석탑은 통일신라시대에 세워진 것으로 추측되는 13층 높이의 독특한 형식의 석탑으로 귀중한 보물이다. 석탑을 지나 장산서원 앞에서 낙동정맥 트레일 코스 중 4코스인 도덕암길로 향한다.
장산서원을 끼고 언덕을 오르니 서원의 풍채가 한눈에 들어오고, 서원 옆의 장독대에 가지런히 정렬된 장독들을 보니 열병하는 병정들의 모습이 떠오른다. 다리를 건너 산길을 조금 걸으니, 도덕암으로 향하는 나무 계단이 우리를 반긴다. 시원한 나무숲 그늘에 바람까지 더하니 산을 오르는 발걸음이 오히려 가벼워진다.
봄기운을 받아 푸르게 옷을 갈아입은 나무들과 이름을 알 수 없는 조그만 봄꽃들을 감상하며 천천히 발걸음을 옮긴다. 한적한 산길을 오르다가 잠시 쉼터를 제공해 주는 바위에서 커피 한 잔의 여유를 즐긴다. 누군가 소원을 빌며 쌓아 놓은 돌탑을 지나 숲길의 색채가 너무 아름다운 길에서는 저절로 셔터를 누르게 된다. 암자와 정상으로 갈라지는 삼거리에 이르니 아쉽게도 어느덧 돌아가야 할 시간이다.
숲속 맑은 공기를 마음껏 마시며 천천히 내려와서 다시 마을 길로 접어드니 길 주변의 야생화들이 아름다운 자태를 한껏 뽐내고 있다. 솜사탕 같은 민들레의 동그란 꽃씨 뭉치들은 바람에 멀리 날려갈 준비를 하는 듯하다. 차를 타고 마을을 벗어나면서 보니 세 그루의 소나무가 마을 어귀에 일렬로 서있는 모습이 마치 우리를 배웅하는 듯하다. 봄이 언제 오고 언제 가는지 모르게 바쁜 요즘, 오늘의 걷기일정으로 마음의 여유를 채워본다.
초록 숲길을 따라 천혜의 풍경과 볼거리가 함께 하는 문경새재 옛길
문경새재는 백두대간의 마루를 넘는 고개로 역사적으로 사회, 경제, 문화의 교류지이면서 군사적 요새로서 역할을 하였다. 새재라는 말에는 ‘새도 날아서 넘기 힘든 고개’, ‘억새가 우거진 고개’, ‘하늘재와 이루릿재 사이의 고개’, ‘새(新)로 만든 고개’라는 의미가 담겨 있다.
주흘산과 조령산 사이에 새재계곡을 따라 만들어진 문경새재 옛길은 총길이 6.5km로 제1관문인 주흘관에서 시작하여 제2관문인 조곡관을 거쳐 제3관문인 조령관까지 이어진다. 조선팔도에서 대표되는 고갯길로 옛날 한양으로 과거 시험을 치르러 오르내리던 선비들의 청운의 꿈이 서려 있는 곳이기도 하다.
병원 일로 쌓인 피로와 스트레스를 모두 날려버릴 수 있다는 부푼 기대를 품고 아침 일찍 출발한다. 입구에 도착하여 푸른 하늘을 배경으로 함께 걸을 멤버들이 모두 모여 기념사진을 남긴다. 문경을 대표하는 과일인 사과를 테마로 만든 작품들과 추억의 한 장면을 만들어본다. 조금 걸으니 탁 트인 공간에 저 멀리 제1관문인 주흘관이 양옆에 성벽의 지지를 받으며 기세 당당하게 서 있다. 왠지 모르게 답답했던 마음마저 뻥 뚫리는 기분이다.
오늘 모임의 유일한 어린이 주인공인 샘이도 많은 이모들 속에서 신나고 행복한 표정이다. 엄마의 손을 잡고 걷기도 하고 가끔은 엄마의 등을 그리워하며 업어 달라고 한다. 길옆 나뭇잎을 만지고 싶다며 조르는 샘이의 목말 태우기에 도전자로 오늘은 내가 나선다. 목말을 타고 신이 난 아이의 표정만큼이나 나도 기분이 좋다. 화려한 단청이 아닌 나무 고유의 색으로만 꾸며진 교귀정의 모습이 더욱 단아하고 아름답다.
길 왼편으로 곱게 쌓인 여러 개의 돌탑이 눈에 들어온다. 이곳을 넘나들던 길손들이 저마다의 소원을 빌며 얹어놓고 간 돌들이 쌓여 만들어진 소원성취탑이다. 옛 선인들의 힘을 빌려 모두 잠시 소원을 빌어본다.
오늘의 목표지점인 제2관문인 조곡관에 가까워지자 아름다운 조곡폭포가 맵시를 자랑하며 우리를 반긴다. 어제 내린 비로 맑은 선율의 폭포 소리도 제법 우렁차고 물줄기도 유리처럼 맑고 투명하다. 삼삼오오 모여서 멋진 폭포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고 발길을 재촉한다. 조곡관에 먼저 도착한 젊은 멤버들은 재미있는 이야깃거리를 만들 수 있는 포즈를 취하며 열심히 촬영 중이다. 어느 드라마에서 본 듯한 한 장면을 패러디한 작품은 우리의 추억거리로 영원히 남을 것 같다.
잠시 휴식을 취하고 되돌아오는 길은 또 다른 맛이다. 정신없이 오를 때 보지 못했던 주변 풍경이 더욱 눈에 잘 들어온다. 바위벽에서 이제까지 보았던 것 중 가장 큰 민달팽이도 보았고 개울에서 우글우글 올챙이 무리도 볼 수 있었다. 이곳의 명물인 고추장 양념 석쇠 구이에 오미자 동동주를 서로 건네며 모두 웃음과 행복이 가득하다.
여행 TIP. 수원화성행궁을 꼭 들려보기를 권하며 5월부터 10월까지는 야간관람도 가능하다. 어르신이나 아이들과 함께라면 화성어차(관광열차)를 타고 둘러보는 것도 좋다. 경주시로 가는 길에 있는 양동마을에 들러 식사와 볼거리를 즐기는 것도 추천한다. 등산이 좋으면 1, 2, 3코스의 낙동정맥 트레일 코스에 도전해 보는 것도 좋다. 문경새재 오픈세트장과 옛길박물관, 자연생태전시관 등 다양한 볼거리가 있다. 주변의 조령산과 주흘산으로 이어지는 다양한 코스의 산행도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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