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지워싱턴대학교 신장내과 연수기 [24년 가을호]
편집부
news@ksnnews.or.kr | 2024-11-11 16:27:21
차진주 / 고려대학교 안산병원 신장내과
안녕하세요. 저는 고려대학교 안산병원 신장내과에 근무하는 차진주입니다. 저는 2023년 3월부터 2024년 2월까지 미국 동부 워싱턴 D.C.에 있는 조지워싱턴대학교(George Washington University) 신장내과 교실(Kidney Disease & Hypertension)에 연수를 다녀왔습니다. 이번 연수는 저에게 큰 터닝 포인트가 되었으며, 앞으로 의사이자 한 사람으로서 어떻게 행복하게 살아갈지 다시 한번 고민하게 된 중요한 계기가 되었습니다.
바쁜 시기임에도 불구하고 번아웃에 시달리던 저를 위해 빈자리를 채워주시고 아낌없이 지원해 주신 차대룡 교수님, 강영선 교수님, 그리고 김호정 선생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처음 연수를 계획할 때, 저는 재택 치료와 원격의료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었고, 향후 한국에서의 재택의료의 미래에 대해 고민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중, COVID-19 팬데믹 이후 미국에서 원격의료 시장이 확대되고, 재택 투석(home dialysis)에 대한 정책과 지원이 증가하고 있다는 점을 알게 되었습니다. 특히 조지워싱턴대학교 신장내과가 그 중심에 있다는 사실을 접하게 되었습니다. 이에 신장내과 교실 과장님인 Dr. Dominic Raj에게 연락을 드리게 되었고, 연수의 기회를 얻게 되었습니다.
조지워싱턴대학교는 워싱턴 D.C.의 중심부, 백악관에서 도보로 15분 거리에 위치한 사립 연구 중심 대학교입니다. 이 대학은 미국 국립보건원(NIH)과의 연계 연구를 중점적으로 수행하며, 우수한 교육 프로그램 덕분에 국제학생 비율이 높은 학교로 알려져 있습니다. 조지워싱턴대학교 신장내과 교실은 대학교병원의 부속 빌딩에 자리잡고 있습니다.
저의 지도교수님인 Dr. Dominic Raj는 다양한 임상연구를 수행하며 NIH 연계 연구를 25년간 이어오셨습니다. CRIC study 등 만성콩팥병 코호트 샘플을 이용한 noncoding RNA 와 microbiome 연구를 진행하고 있었고, 저는 그 연구에 참여하여 유전자 타겟 치료 등 임상연구 과정에 참여함으로써 최신 연구 동향을 경험할 수 있었습니다. 또한 신장내과 교실의 여러 전문의들과의 교류를 통해 미국 의료의 원격진료를 경험하고, home dialysis의 거점기관으로서 기술과 관리방법을 배울 수 있었습니다.
이 과정에서 얻은 지식과 경험은 한국의 재택진료를 새로운 관점에서 바라보게 해주었습니다. 아쉽게도, 우리나라의 사정과 정책, 의료수가등을 고려할 때 home hemodialysis는 아직 요원하지만, 향후 변화할 개별화된 의료시장에서 어떻게 적용할 수 있을지에 대한 통찰을 얻었습니다.
인상적이게도 신장학교실에서는 매년 미국 신장환자협회(American Association of Kidney Patients) 글로벌 콩팥질환 서밋(Global Summit for Kidney Disease)을 개최하고 있었습니다. 이 서밋은 환자집단, 의료진, 정치인을 포함한 포럼으로, 그룹 간 이해를 증진하고 정책 반영에 중요한 영향을 미치는 토론의 장으로 자리잡고 있습니다. 미국뿐만 아니라 해외 각국의 연계를 통해 글로벌 콩팥질환 문제 해결에도 기여하고 있습니다. 조지워싱턴대학교는 이러한 글로벌 연계나 정치권과의 협력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장려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다양한 경험을 통해 저는 대학의 자세와 거시적 관점에서의 의료에 대해 깊이 고민하고 성찰할 수 있었습니다.
아마 모두가 한번쯤은 ‘미국에서 의사를 한다면?’ 이라는 생각을 해보셨을 겁니다. 저 역시여러 번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임상시험 환자 등록 과정에서 의료진이 백과사전만 한 동의서를 가지고 와서 아랍어나 스페인어로 동의를 받는 과정을 지켜보며, 다양한 인종의 환자들이 대기 공간에서 진료를 받기 위해 기다리는 것을 보면서, 그리고 학내 근처에서 발생한 총기사고로 인해 학교 메일을 통해 통행 제한 알람이 오는 상황을 경험하면서, 결국 제가 이 문화적 차이를 극복하기는 어렵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럴 때마다 ‘우리나라 좋은 나라, 나는 대한민국 의사야’라고 되새기며 한국으로 돌아가 열심히 살기로 마음먹었지만, 애석하게도 앞으로 그 때의 결심을 다시 다질 기회가 올지 모르겠습니다.
워싱턴 D.C.는 도보와 대중교통으로 이동하기에 매우 편리한 곳입니다. 운전하기에는 다소 복잡한 동네라, 제가 그렇게 worst driver가 아닌데도 불구하고 운전을 포기하고 직장까지 도보로 갈 수 있는 곳에 집을 구해 뚜벅이 생활을 하였답니다. 지하철이 5분거리에 있고, 기차역까지 central station에서 30분 거리여서 일상생활을 하거나 여가생활을 즐기기에 무리가 없었습니다.
한국에서 마스크를 계속 착용하다가 마스크 없는 세상이 얼마나 다른지 느낄 수 있었습니다. 집에서부터 걸어서 백악관을 지나 World War II Memorial과 워싱턴 기념탑이 있는 내셔널 몰(National Mall)까지 산책하는 것이 저의 일상이었습니다. 한국에서 친구나 지인들이 놀러오면 그 길을 따라 야경을 보러가기도 했고, 포토맥 강변 유람선을 타거나 조지타운의 Bar에서 맥주 한잔을 즐기는 것도 유쾌한 경험이었습니다.
제가 D.C에서 제일 좋아하는 bar는 ‘Off the record’인데, Speakeasy 타입의 bar로 백악관 바로 앞에 위치해 있어 가끔 앉아 있으면 의원들이 이야기하는 것을 엿보거나 할 수 있었습니다. 구석에 앉아 있으면서 미국 90년대 영화를 떠올리곤 했는데, 다음에 D.C.를 방문하신다면 꼭 가보시길 추천합니다. 물론 bar가 제가 ‘가장’ 좋아한 곳은 아닙니다.
워싱턴 D.C.는 대부분의 박물관이 무료여서 주말이나 쉬는 주중에 한번씩 방문하기에 적격이었습니다. 저는 그중에서도 ‘National Gallery of Art’를 정말 좋아했습니다. 친구들과 1층 카페에서 커피나 브런치를 즐기기도 했고, 제가 가장 좋아하는 작품 앞에서 수십 분 동안 멍하니 앉아 있을 때 행복감을 느꼈습니다. 그럴 때면 종종 ‘내가 핸드폰 없이 불안해하지 않고, 연락을 받지 않아도 되는 시기가 언제였을까? 온전히 나만을 위한 시간을 가진 것은 언제였나?’라는 생각을 하면서, 이 쉬어가는 시간이 얼마나 소중한지 깨닫곤 했습니다.
미국에서의 소중한 인연들도 그 시간을 더 즐겁게 만들어 주었습니다. 같은 연구실에 있던 연구교수 Anvesha Srivastava는 제가 교실에서 적응하고 연구에 참여할 수 있도록 많은 도움을 주었습니다. 과거 학교 동기였던 친구들이 D.C.에서 의사나 연구원으로 활동하고 있어, 행여나 제가 객사할까봐 저를 항상 체크해 주었고(다행히 잘 살아남았습니다!), 같은 기간에 미국 연수를 온 병원 동료들과는 둘도 없는 친구들이 되었습니다.
또한 근교에 사는 외가 가족 덕분에 휴일 및 주말에 미국 여기저기를 여행할 수 있었습니다. 그 외에도 한국에서 저를 걱정하고 염려해 주신 분들을 생각하게 됩니다. 그동안 COVID-19 팬데믹 동안 제 안에 갇혀 외면하고 살았던 버려진 시간을 다시 채우고, 그에 대한 고마움을 느낄 수 있었던 시간이었습니다.
1년이라는 시간은 길지도 짧지도 않지만, 제가 다시 충전할 수 있었던 적절한 시간이었습니다. 이 충전이 요즘 같은 시기에 오래 지속되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그리고 지금 이 글을 읽고 계신 선생님들께 항상 건강과 행복이 함께 하기를 기원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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