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세선린내과 개원 [24년 가을호]
편집부
news@ksnnews.or.kr | 2024-11-14 16:56:04
안성영 / 연세선린내과 원장
안녕하세요? 국토 최남단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에 위치한 연세선린내과 원장 안성영입니다. 저는 세브란스병원에서 인턴, 내과 전공의 및 신장내과 전임의를 마치고 종합병원을 거쳐 현재는 서귀포에서 2022년 9월에 개원하여 진료하고 있습니다. 대한신장학회 회원 여러분께 인사드릴 수 있어 큰 영광입니다.
신장내과를 꿈꾸었던 이유
늘 소명에 대한 마음을 가지고 있었고, 그 마음에 사로잡혀 내과를 꿈꾸고 지원했던 것 같습니다. 그 가운데서 환자의 마지막 순간에 제일 필요한 과가 무엇일까 고민했고, 처음에는 종양내과 의사가 되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지금 돌아보면 그 동기가 참 우습기도 하지만, 종양내과 의사로 평생을 살아가려면 계속 최신 지견을 연구하고 공부해야 하며, 특히 자신 없는 논문을 써야 할 것 같은 부담감이 너무나 두려웠습니다. 그래서 ‘End stage’라는 질병명이 붙은 신장내과를 대신 선택한 것 같습니다.
전임의 이후의 종합병원에서의 삶
신장내과를 선택한 동기는 거룩하지 않았지만, 훌륭하신 세브란스 교수님들의 지도 편달 아래 전공의, 군의관, 전임의를 수련하게 되었습니다. 이후 여러가지 사정으로 울산 D종합병원에서 임상과장으로 부임하게 되었습니다. 임상과장이라는 직함으로 CRRT를 돌리고 각종 중환자실 환자를 돌보며, 투석실과 외래에서도 환자들과 함께 할 수 있었던 시간은 매우 즐거웠습니다. 잘해서라기보다 지금 생각해보면 기분 좋으라고 해 주신 이야기라는 것을 알지만, “너의 수고로 환자가 살아났다”는 동료들의 격려를 들을 때면 밤늦게라도 환자 옆을 지켰고, 그 덕분에 신장내과 의사로서 보람 있는 시간을 보낼 수 있었습니다.
환자를 치료하는 즐거움이 있었다면, 한편으로는 중환자를 늘 보면서 마주하게 되는 인간으로서의 두려움이 생겨나던 시간이기도 했습니다. 외래를 볼 때면 완치의 개념보다는 악화되는 시간을 연장한다는 무력감이 동시에 들었고, 중환자를 보면서 언제까지 이 자리를 지킬 수 있을까 하는 부담이 매일 생겼습니다. 이러한 고민 속에서 탈출을 꿈꾸며 다른 일을 해볼까 하는 생각을 많이 했던 시간이기도 했습니다.
서귀포에 오게 된 과정
사명대로 열심히 근무했으면 좋았을 것을, 하필 휴가 중 친하게 지내던 동기형과 술자리를 하게 되면서 제주말로 “산남이하(한라산아래)에 신장내과 의사가 부족하다”라는 이야기를 듣게 되었을 때 가슴에 전율이 일었습니다. 지금 모두가 개원할 자리를 찾지 못해 고민하고 있는 이 시대에, 신장내과 의사가 부족한 블루오션이 있다는 사실은 저에게 큰 충격이었습니다. 고민 끝에 서귀포의료원으로 오게 되었습니다. 물론 가족들의 격렬한 반대가 있었지만, 설득하여 다 같이 이사를 오게 되었습니다.
섬 생활이 타지인에게 쉽지 않은 이유는 대도시와 같은 문화 인프라가 부족하다는 소소한 이유도 있지만, 가족(특히 부모님들)이 편찮으실 때 육지로 쉽게 방문할 수가 없어 불편하고 아직도 신경이 쓰입니다. 클릭 한 번으로 주문했던 택배도 여러 날이 더 걸리고, 배송료도 매번 더 지불해야 하며, 또 배송이 안되는 것들은 왜 이렇게 많은지 아쉬움이 큽니다. 여러 불편함이 있지만 서귀포 앞바다를 바라보며, 차 한잔 마시면서 글을 쓰는 지금 이 순간 참 좋다는 생각이 듭니다.
개원의를 꿈꾸게 된 이유와 현재 삶
의료원이라고 만만한 생각으로 입도하였지만 환우들이 의료원에 대해 가지는 선입견과 열악한 의료환경으로 인해 쉽지 않은 시간이었습니다. 종합병원의 선배님들이 다 그러시겠지만 의료 인프라가 부족한 상황에서 사소한 프로시져나 기타 설명도 일일이 해야 하는 상황이 생소하기도 했고, 신장내과 동료가 없어서 많은 투석환자와 입원환자들을 돌보느라 처음 생각했던 생활과 달라 놀라기도 했습니다.
코로나 시기를 지나며 호흡기내과가 없어서 코로나병동 전담의를 맡게 되었는데, 이 또한 서귀포의 특수한 상황으로 인해 여러 가지 생각에 뜨거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무엇보다도 투석센터가 부족하여 서귀포 환자들이 선택할 수 있는 선택지가 너무나 부족하다는 사실에 관광객도 자유롭게 올 수 있는 센터의 필요성을 절실히 느꼈습니다. 이에 또 하나의 투석센터를 향한 걸음을 내딛게 되었습니다.
앞으로의 꿈
오픈 과정에서 여러 말 못할 일들이 많았지만, 정신없이 개원한 이후 2년의 시간이 흘렀습니다. 의기투합하며 시작했던 직원들도 이제는 몇 배로 늘었고, 돌보아야 하는 환우들도 증가함에 따라 기쁨과 함께 염려도 커져가는 것을 느낍니다. 남은 인생의 시간과 힘을 어떤 가치와 집중으로 쏟을 것인지에 대해 깊이 고민하게 됩니다.
꼭 종교적 신념이 아니더라도, 제가 가지고 있는 따뜻함으로 End stage에 있는 우리 이웃에게 성경에 나오는 선한 사마리아 사람처럼 좋은 이웃이 되고 싶다는 마음을 다잡습니다. 경영이라는 안경을 끼고 지내다 보니 진정으로 챙겨야 할 것들을 많이 놓친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부족함을 알기에 더욱 정진해가겠다고 다짐합니다. 혹 서귀포로 여행 오는 환우들이 있다면, 선한 이웃이 되기를 꿈꾸는 인공신장실이 있다는 믿음을 가지고 맡겨주셔도 좋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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