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대한 자연의 신비와 아름다운 풍광이 이어지는 오름 여행 [24년 가을호]
편집부
news@ksnnews.or.kr | 2024-11-26 17:20:48
산봉우리를 뜻하는 순수 우리말인 ‘오름’은 지금은 제주도에서만 사용되는 방언으로 남아있다. 한라산 주변의 기생화산을 포함하여 제주도 각지에는 368곳의 오름이 분포하고 있으며, 주변의 아름다운 풍광과 걷기 편한 코스로 인해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고 있다. 제주를 대표하는 세계 자연유산인 거문오름, 가을 억새를 감상하는 정물오름, 그리고 숲길 여행을 즐기는 이승이오름으로 함께 떠나보자.
위대한 자연이 빚어낸 오름의 신비함과 아름다운 풍경이 어우러진 거문오름
거문오름의 이름은 분화구 내 울창한 산림이 어둡고 음산한 기운을 띤 데서 유래되었으며, ‘신령스러운 산’이라는 의미를 포함하고 있다. 천연기념물이기도 한 거문오름 용암동굴계는 2007년 우리나라 최초로 세계 자연유산에 등재되었다. 거문오름 탐방안내소에 들러 예약자 확인을 한 후 해설사분의 명강의를 통해 거문오름 역사를 귀 기울여 듣는다.
오름 탐방을 시작하여 빽빽이 늘어선 삼나무들의 호위를 받으며 오솔길을 따라 걷다가 잠시 쉬어 가는 시간이다. 삼나무를 제주도에서는 예전부터 ‘쑥대나무’라고 부른다고 한다. 이는 ‘쑥쑥 대나무처럼 잘 자라는 나무’라는 의미로, 요즘 젊은이들이 쓰는 약어만큼이나 재미있다.
끝이 보이지 않는 나무계단을 오르는 시작점에서 여유를 가지고 한 걸음씩 천천히 오른다. 엄마와 함께 온 초등학생이 경치가 멋지다며 엄마를 모델 삼아 열심히 사진 작품을 만든다. 몇 개의 계단인지 세어보지는 못했지만, 숨이 턱 끝까지 차오를 때쯤 드디어 전망대가 기다린다. 흐린 날씨 탓에 아름다운 풍광을 볼 수는 없었지만, 해설사분의 재미있는 설명을 들으니 선명한 풍광이 눈앞에 그려진다.
발걸음을 옮겨 도착한 다음 전망대는 주변의 오름을 한눈에 감상할 수 있는 중요한 곳인데, 아쉽게도 오늘은 사진으로 대신한다. 백약이오름은 백 가지 약초가 자라는 오름이고, 그 옆의 칡오름은 칡이 많아서 붙여진 이름이라는 해설사분의 청산유수 같은 이야기를 들으며 다음 방문을 약속한다.
전망대 코스를 내려와서 이제는 분화구 코스의 시작이다. 보통은 산골의 계곡이라고 생각하는 이곳이 20여만 년 전 용암이 흘러 만들어진 작품이라니 믿기지 않는다. 울창한 숲이 우거진 사이로 펼쳐지는 신비한 오솔길 여행의 시작이다. 길 주변으로 김이 모락모락 올라오는 풍경은 이곳이 살아있는 땅속의 힘으로 꾸며진 위대한 곳임을 말해준다. 나무와 바위, 초록 이끼들의 속삭임에 나도 모르게 귀를 쫑긋 세워본다.
곶자왈은 지형 덕분에 지열이 유지되어 늦가을에도 초록의 아름다움이 충만한 동화 속 나라에 있는 듯한 느낌을 준다. 곶자왈은 숲을 의미하는 ‘곶’과 넝쿨을 의미하는 ‘자왈’이 합쳐진 제주도 말로, 예전에는 바위와 자갈만 있어 쓸모없는 땅으로 천대를 받던 곳이다. 하지만 지금은 사시사철 나무와 함께 이끼들이 풍성한 자연의 보고로서 숲의 허파 역할을 해주는 곳으로 사람들의 주목을 받고 있다. 다양한 식물들과 함께 동물들에게도 낙원으로 사랑받는 곳이다.
지열의 따스함이 끝나고 이제는 천연 에어컨인 풍혈이 기다린다. 여름에는 이곳에서 무더위를 식혀주는 시원한 바람이 나와 지나가는 사람들의 발길을 멈추게 한다. 전망대 건너편 언덕에는 A, B, C, D 스펠링과 함께 일본군의 본부 진지로 사용했던 슬픈 역사의 흔적이 남아있다. 마지막 코스인 수직동굴은 해설사분의 탐험기로 동굴을 한 바퀴 둘러본 느낌이다. 해설사분의 유창한 입담과 함께 쏜살같이 지나간 3시간의 거문오름 여행을 마무리한다.
푸른 하늘 아래 은빛 억새들의 군무와 멋진 풍경이 이어지는 정물오름과 금오름
기생화산인 오름에는 대부분 억새 군락이 만들어져서 가을에 제주를 찾는 사람들의 필수 코스로 자리 잡고 있다. 많은 오름 중에서도 정물오름은 가족과 함께 편하게 오를 수 있는 코스로, 아이들의 걸음으로도 30분이면 오를 수 있다. 말굽형의 분화구를 가진 오름으로, 한쪽으로 올라 반대쪽으로 내려올 수 있도록 탐방로가 마련되어 있다. 왼쪽의 완만한 능선으로 올라가 오른쪽의 가파른 계단으로 내려오는 것이 권장 코스다.
큰 길 옆에 있는 ‘정물오름 입구’라는 작은 표지판을 보고 갈림길을 따라가니 넓은 공터와 함께 정물오름 표지석이 우뚝 서서 방문객들을 반갑게 맞아준다. 완만한 왼쪽 길을 따라 천천히 발걸음을 옮기니 무성한 억새들이 나란히 손을 흔들며 서 있다. 억새들의 바통을 이어받은 초록 숲 터널이 끝나면서 확 트인 오름 능선과 함께 푸른 하늘이 눈앞에 펼쳐진다.
능선을 천천히 오르면서 보이는 드넓은 초원과 금오름의 멋진 풍광이 하나의 풍경화 작품처럼 아름답게 어우러진다. 햇살에 반사되어 비치는 은빛 억새들의 군무는 또 다른 반전으로 우리에게 다가온다. 어느덧 정상에 올라 사방으로 펼쳐진 풍경을 천천히 음미하며 여유를 부려본다. 정상 등반 기념으로 멋진 추억의 사진을 남기고 내리막길로 향한다. 멀리 보이는 풍력발전기들이 날개를 힘차게 돌리며 우리의 행진을 응원한다. 철도 받침목으로 튼튼히 만든 나무계단 덕분에 가파른 내리막길도 어렵지 않게 마무리한다.
바로 옆에 있는 금오름은 한라산 서쪽을 대표하는 오름 중 하나로, 예로부터 신성시하여 금악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기도 한다. 오름 정상에는 깊이 52m의 원형 분화구가 있으나 지금은 바닥이 드러나 습지처럼 되었다. 전망이 좋고 일몰이 아름다운 곳으로, 유명 연예인의 방송을 통해 많은 사람의 관심을 한 몸에 받고 있다. 어르신과 함께 하는 오늘의 코스는 시멘트 길로 오르는 정상 코스가 아닌 금오름 주변을 한 바퀴 돌아보는 둘레길이다. 오름 입구에 있는 연못의 이름은 ‘생이못’이다. 자주 마르는 못이어서 생이(새)나 먹을 정도의 물이 고여 있거나 새들이 많이 모여들어 먹던 물이라는 뜻이다. 제주도 말을 들어보면 재미있으면서도 깊은 뜻이 숨어 있는 경우가 많다.
둘레길 입구로 들어서니 하늘을 찌를 듯 쭉쭉 뻗은 초록 나무들이 우리를 반기며 호위를 선다. 금방이라도 마차가 지나갈 것 같은 황토빛 시골길을 따라 천천히 발걸음을 옮긴다. 길 가운데에는 이름을 알 수 없는 풀들이 수북이 자라 저마다 사람들의 관심을 끌고 있다. 나무들의 행렬이 끝나고 나지막한 언덕으로 오르는 코스에는 한적한 시골 풍광이 펼쳐진다.
언덕 기슭에 핀 노란 꽃들은 해맑은 웃음으로 지나가는 사람들과 인사를 나눈다. 다시 숲길이 이어지면서 어디선가 풍기는 구수한 소똥 냄새가 코를 자극한다. 나도 모르게 발걸음을 재촉하다 보니 어느새 오름을 한 바퀴 돌아 출발점에 도착한다.
울창한 원시림 숲 터널과 아름다운 오름 경치가 어우러진 이승이오름과 수악길
이승이오름은 제주도 남원읍에 있는 기생화산으로, 오름의 생긴 모양이 삵(살쾡이)을 닮았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한자 이름인 이승악(狸升岳)의 ‘이(狸)’도 삵을 뜻하는 말이다. 오름 정상에서는 사라 오름과 함께 한라산 정상까지도 조망할 수 있다. 한라산 둘레길인 수악길은 깊은 산 속을 따라 울창한 원시림이 자연 그대로의 모습으로 잘 보존된 숲길이다.
한라산 중턱에 시원하게 뚫린 자동차 전용도로 주변으로는 푸른 하늘과 어우러진 풍광이 아름답게 펼쳐진다.
이승이오름 주차장 건너편에 있는 오름 입구까지 이어지는 샛길로 들어서니, 길 옆 마을 공동목장에서 한가로이 풀을 뜯고 있는 말과 소들이 반갑게 인사를 건넨다. 입구 주차장에 있는 생태탐방로 안내도를 보며 오늘의 걷기 코스를 확인한다.
본격적인 숲길로 들어서니 환하던 주변이 갑자기 어두워져 으슥하기까지 한 느낌이 든다. 울창한 자연림으로 숲이 너무 우거져 강렬한 태양빛도 들어올 틈이 없어 보인다. 나무들 사이로 이어지는 오솔길을 따라 천천히 오르면서 느껴지는 진한 숲 내음에 발걸음이 가벼워진다. 숲길을 걷다가 숨을 고르며 하늘을 보니 해님에 비친 나뭇잎들이 만든 작품이 걸작이다. 정상으로 향하는 길로 들어서니 오르막이 심해지고 본격적인 나무 계단이 끝없이 이어진다. 머리 위로 푸른 하늘이 조금씩 보이기 시작하더니 드디어 정자 쉼터가 있는 정상이다. 파란 하늘 아래 멀리 보이는 오름들과 한라산의 풍광을 천천히 둘러보며 휴식을 취한다.
반대편으로 내려가는 코스는 울창한 숲길을 따라 야자매트가 놓여 있어 발의 피로를 풀어주는 길이다. 전망대 표시를 보고 올라가 보니 주변의 나무들이 너무 자라서 온통 초록 나무들만 보인다. 삼각대에 카메라를 설치하고 까치발까지 해서 찍어보니, 주변의 골프장과 푸른 하늘이 조화를 이루는 아름다운 풍광이 담긴다. 사진으로 멋진 경치를 감상한 후 다시 발걸음을 옮긴다.
산길을 내려와 임도로 이어지는 삼거리에서 좌측 이승이오름 순환코스로 향한다. 연두빛 숲 그늘 아래 넓게 트인 길을 여유롭게 걸으니 몸과 마음이 맑아지는 느낌이다. 길가에 있는 정자에서 정겨운 웃음소리와 함께 담소를 나누시는 두 어르신이 오늘의 코스에서 처음 만난 사람들이다. 냇가를 가로지르는 돌길을 건너다 냇물 위에 비친 나무들의 예쁜 모습에 잠시 넋을 잃는다. 반갑게 인사하는 아주머니 두 분의 목소리에 정신을 차리고 다시 뚜벅이로 돌아간다.
오름 순환코스로 갈라지는 삼거리에서 임도를 따라 이어지는 수악길을 조금 더 걸어보기로 한다. 돈내코에서 출발해 사려니오름까지 이어지는 한라산 둘레길 3코스인 수악길 중 일부다. 끝없이 펼쳐지는 길 위로 초록 나무들이 가지를 길게 뻗어 덮고 있는 숲 터널을 걷노라니 지상낙원이 따로 없다. 길 안쪽으로 중간중간 보이는 돌담들은 조선시대에 목장 경계용으로 만든 잣성이다. 수악길 전 코스 도전은 다음으로 약속하고 되돌아와서 3시간여의 걷기 일정을 마무리한다.
여행 TIP. 거문오름 탐방을 위해서는 인터넷 예약이 필수다. 제주 세계 자연유산 센터 내에서 용암동굴을 체험해 보고 4D 상영관에서 동영상을 감상하는 것도 권장 코스다. 정물오름 외에도 제주에서 억새와 함께 멋진 경치를 감상할 수 있는 곳은 다양하다. 바다를 같이 보고 싶다면 닭머르 해안길이 좋고, 높고 푸른 하늘을 보고 싶다면 따라비오름, 새별오름, 아끈다랑쉬오름을 추천한다. 이승이오름을 방문할 때 걷기를 좋아한다면 오름 주차장에서 오름 입구까지 걸어도 좋다. 봄에는 아름다운 분홍 벚꽃을 감상하며 걸을 수 있는 코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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