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정상의 정상화 [22년 겨울호]
편집부
news@ksnnews.or.kr | 2022-12-01 17:32:18
<1>
한가로운 토요일 점심시간, 갑자기 신장실에서 소란스러운 소리가 들어옵니다.
“이거 이쑤시개 아니야? 아니 어떻게 음식에 이런 것들이 들어갈 수가 있어?”
자초지종을 확인해 보니 혈액투석이 끝나고 병원에서 제공한 점심 식사를 하던 환자가 음식물 속에서 이쑤시개로 생각되는 조각이 보였다고 불평을 하였는데, 이를 본 병원 직원이 이쑤시개가 아닌 닭 뼈조각이라고 해명을 하는 와중에 실랑이를 벌인 것입니다.
시력이 좋지 않았던 환자는 본인이 제기한 불만이 받아들여지지 않으니 마음이 상하였고, 직원은 나름대로 시시비비를 밝히고 싶었으나 환자가 동의해 주지 않으니 목소리가 높아졌던 것이지요. 결국 음식을 만들어서 보내주신 식당 사장님까지 오셔서 해명을 하신 후에야, 사건은 일단락되었습니다.
신장실에서 식사를 제공해 주었던 시절에 실제로 벌어졌던 이야기입니다. 이 밖에도 반찬이 짜니 싱겁니를 비롯, 고기반찬이 부족하다는 불평, 반찬이 날마다 비슷하다는 불평, 나는 치아가 좋지 않으니 죽을 원한다는 요구사항 등은 항상 골칫거리였지요.
그러나 코로나 팬데믹이라는 길고 긴 터널을 지나면서, 인공신장실 환자들은 매우 긴 시간 같은 공간을 공유하기에, 서로 방역에 협조해야 한다는 걸 뼛속 깊이 새기게 되었고, 병원 내 취식이 정상적인 게 아니었음을 잘 알게 되었지요.
이렇게 힘들게 시행착오를 겪은 후, 정도를 향해가고 있는 요즘, 빵과 우유니까 괜찮지 않겠냐고, 김밥 또는 주먹밥처럼 간단한 먹거리인데 어떠냐고 물어보시는 분들이 한두 분 있습니다.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면서 말해봅니다, 그 고생을 다시 하고 싶진 않다고요.
<2>
호기롭게 인공신장실의 문을 연지 3개월쯤 되었을까요?
외래 직원을 통해서 전달받은 메시지에, 어떤 분이 투석과 관련하여 면담을 원하신다고 합니다. 흐트러진 옷매무새를 바로잡고, 잠시 큰 숨을 쉬면서 무슨 말을 할지 머릿속을 정리한 후, 직원에게 들여보내도 된다는 사인을 보냅니다.
잠시 후 들어온 중년 남성의 첫인상은 만성질환을 가지고 계신 분과 달리 꽤 건강해 보입니다. 찬찬히 이야기를 들어보니, 우리 병원이 개원한 지 얼마 되지 않은 것 같아 도와주고 싶어 방문하였다고 합니다. 본인이 투석에 대해서 매우 잘 알고 있으며, 투석 환자분들을 아주 많이 데리고 올 수 있는데 환자들이 내는 진료비는 어떻게 해줄 수 있느냐고 물어봅니다.
3개월 차 개원의는 반신반의하면서 일반적인 투석 환자의 진료비와 본인 부담금을 최대한 자세하고 친절하게 설명해주었고, 뭔가 기대했던 답변을 듣지 못했다는 표정을 지었던 그분은 추가 질문 없이 병원을 떠났습니다. 그리고 개원 십여 년째인 현재까지 그 중년 남성을 다시 볼 수 있는 기회는 한 번도 없었네요.
사실 당시 3개월 차 개원의는 그분의 의도를 어느정도 짐작을 했던 것도 같습니다. 선배들을 통해서 몇 번 들었던 이야기였고, 설마설마했던 이야기가 내 눈앞에서 펼쳐졌으니까요. 사실 환자 수보다 직원 수가 더 많았던, 고금리의 개원 빚을 잔뜩 지고 전전긍긍하며 살아가던 그때. 그분의 말을 듣고 얼마나 당황스러웠는지, 얼마나 의연하게 대응을 했었는지는 흐릿한 기억만이 남아있습니다.
그러나 개원 십여 년이 넘어가는 요즘 확실하게 느끼는 것 한 가지는, 정상적인 환자와 의사의 관계가 되기 위해서라면 그때 그분의 역할은 우리에게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기회가 된다면 그분께 말씀드리고 싶네요. 우리 투석 전문의는 환자들에게 진료비만 제대로 받는 게 아니라, 진심 어린 감사 인사도 꽤 자주 받으면서 살아간다고요.
<3>
‘비정상의 정상화’라는 공약을 여러 번 들어보셨을 겁니다. 과거로부터 지속되어온 국가 사회 전반의 비정상을 혁신하여 기본이 바로 선 국가를 만들겠다는 과거 정부의 어젠다입니다. 우리 사회 곳곳에 뿌리 깊게 자리 잡고 있는 부정부패, 부조리, 불법, 편법 등의 ‘비정상’을 바로잡아 법과 원칙이 바로 선 국가와 사회를 만들어 ‘정상’을 구현하겠다는 야심작이었지요.
처음 국정 어젠다로 등장하고 난 후 몇 번의 정부가 바뀐 시점인 요즘도 심심치 않게 등장하는 단골 멘트인 걸로 봐서는, 아직도 우리 사회 전반에서 정상화해야 할 과제는 많은 것 같습니다. 복잡한 이해관계 속에서 꼬인 실타래를 하나씩 풀어나간다는 건 꽤 시간도 걸리고, 골치도 아픈 일이니까요. 그렇다면 우리들의 경우는 어떨까요? 윤리성의 확립이라는 같은 방향을 바라보는 우리들의 경우라면, 비정상의 정상화에 소요되는 시간은 그리 오래 걸리진 않을 거라고 감히 예측해 봅니다.
[ⓒ 대한신장학회 소식지.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