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이요 클리닉에서의 1년 – 배움과 성장의 시간 [25년 겨울호]

편집부

news@ksnnews.or.kr | 2025-12-11 10:24:41

윤세희 / 건양대학교병원 신장내과

안녕하세요.
대한신장학회 회원 여러분께 제 해외 연수 경험을 나눌 기회를 얻게 되어 영광입니다. 저는 건양대학교병원 신장내과의 윤세희입니다. 2024년 7월부터 2025년 6월까지 1년 동안 미국 미네소타주 로체스터에 있는 메이요 클리닉(Mayo Clinic)에서 연수를 다녀왔습니다. 로체스터에서의 1년은, 2010년부터 2013년까지 대구에서 지낸 4년을 제외하면 줄곧 대전에서 생활해온 저에게 전혀 새로운 환경이었습니다. 낯선 곳에서의 홀로 생활을 통해 국제적인 시야를 넓히고 자신감을 키울 수 있었던 뜻깊은 시간이었습니다.

랩 멤버

연수를 준비하며

연수를 준비하던 초반, 설렘과 기대를 안고 평소 동경하던 해외 연구자들에게 직접 메일을 보내기 시작했습니다. 30명 넘는 연구자에게 연락을 드렸지만, 답장을 받는 일은 생각보다 쉽지 않았습니다. 그러던 중, 현 건양대학교병원장이시자 심장내과 은사님이신 배장호 교수님께서 메이요 클리닉의 Amir Lerman 교수와 인연이 깊다는 사실을 떠올렸고, 우연히 그의 부인이 신장내과의 Lilach O. Lerman 교수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 인연으로 Lilach O. Lerman 교수님과 연이 닿아 미네소타 메이요 클리닉으로 연수지가 결정되었습니다. 


연구실 경험 – 다채로운 주제와 국제적 협력

메이요 클리닉

Lerman 교수님의 연구실은 신동맥고혈압 모델을 기반으로 한 연구실로, 최근에는 지방유래 중간엽줄기세포, 엑소좀, 미토콘드리아 기원 단백질에 대한 연구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저 또한 비교적 오랜 기간 기초 실험실 연구에 참여해 온 경험이 있어 실험 환경이 낯설지 않았고, 기존과는 다른 새로운 연구 주제가 흥미로웠습니다. 처음에 제가 맡은 임무는 특정 크기의 세포 외 소포체를 분리하는 것이었습니다. 중간엽줄기세포를 직접 배양하고 다양한 칼럼을 개발해 원심분리 및 소포체 크기 측정을 시행하였으나, 약 3개월간의 실험 끝에 아쉽게도 실패로 결론이 내려졌습니다. 이후 교수님께서는 이전 방문 연구자들이 남긴 데이터를 정리하는 임무를 맡기셨습니다. 데이터를 검토한 결과 양은 많았으나 정리가 되어 있지 않았고, 랩 매니저에게 확인해 보니 의미 있는 결과가 없어 중단된 연구의 자료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다소 아쉬움이 있었지만, 흩어진 데이터를 정리하고 이미지를 분석하는 과정에서 새로운 의미를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사실 크리스마스에 아침, 점심, 저녁을 메이요 병원 식당에서 제공하는 도시락 박스를 먹으면서 지낼 정도로 많은 시간이 들었습니다.)

그 후에 부족한 부분의 실험을 더 보충하게 되고 랩실의 협력 연구팀인 University of Southern California 팀의 분석 결과까지 첨부하게 되어 어느 정도 의미가 있는 결과물을 만들어 내게 되었습니다. 그 후부터 영어가 서툴고 말도 잘하지 못해 찬밥 신세였던 제가, 실험실 내에서 조금씩 인정받기 시작했습니다. 교수님의 신뢰를 한 몸에 받게 되면서 랩 미팅 때마다 교수님께서 저를 보며 미소 지으시곤 했고, 중국인 연구자들은 저와 공저 연구를 제안하기도 했습니다. 대전 구석의 연구실에서 외롭게 연구하던 제가 미국 메이요 크리닉의 저명한 교수님께 인정받으니 큰 설렘과 자신감을 느꼈습니다.

이후 Lerman 교수님은 두 개의 과제를 추가로 맡기셨으며, 귀국한 현재도 매일 메일을 주고받으며 과제를 지속하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인상 깊었던 것은 Lerman 교수님의 연구 태도였습니다. 제가 작성한 논문 초안을 프린트해 하나하나 연필로 세심하게 교정하여 주신 깨알 같던 주석은 가장 중요한 연수 기념품이 되었습니다. 수도 없이 반복되는 수정 과정을 거쳐 완성도를 높여 가는 교수님의 모습에서 ‘진정한 학자’의 자세를 배웠습니다. 메이요 크리닉에서 보수를 받고 일 한 것은 아니었지만, 교수님의 지원과 인정, 격려로 어느 곳보다 열심히 일할 수 있었고, 그 경험을 통해 리더로서의 자세 또한 되돌아보게 되었습니다. 

제가 근무하던 Stabile Building 7층에는 Lerman 교수님 연구팀 외에도 세계적으로 유명한 Mayo clinic PKD, Kidney Stone, AI 연구센터가 함께 자리 잡고 있어서 교류와 협력이 활발하고 세계 최고 수준의 각 분야가 시너지를 내며 발전하는 분위기였습니다. PKD center의 Dr. Harris, Dr. Torres, Dr. Irazabal , Kidney stone center의 Dr. Lieske 등 세계적인 석학들과 매일 만나면서 인사를 나눈 것도 소중한 경험이었고 그분들 또한 일요일에도 열심히 일하시던 소탈한 모습을 보면서 진정한 학자의 성실함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교육 프로그램과 학문적 배움 

카운티 페어

메이요 클리닉의 신장내과 교육 프로그램은 놀라울 정도로 체계적이었습니다. 월요일에는 PKD 세미나, 화요일에는 Nephrology Grand Round, 목요일에는 Electrolyte Lecture, 금요일에는 Journal Club과 Biopsy Conference가 열렸습니다. 이 외에도 내과 Grand Round, 분자생물학 강의, 다양한 연구 모임이 이어져 일주일 내내 깊이 있는 학문의 바다에서 헤엄칠 수 있었습니다. 세미나에 참석하면 언제나 커피와 간단한 간식이 마련되어 있었고, 때로는 점심 식사까지 제공되어 언제나 배고픈 외국에서 온 방문자로서 또 하나의 큰 기쁨이었습니다.


문화와 사람들 그리고 영어 

로체스터는 미네소타 최대 도시인 미니애폴리스에서 남쪽으로 약 90마일 떨어진, 인구 12만 명의 소도시입니다. 하지만 생활에 필요한 대부분의 편의시설이 10분 거리 안에 있어 놀라울 만큼 살기 편했습니다. 처음 도착했을 때는 6월 말이었는데 너무 평화롭고 정돈된 도시 풍경에 ‘이곳이 천국인가’ 싶었고, 한겨울의 혹한에는 그동안 경험해 보지 못한 뼛속을 스미는 추위를 경험할 수 있었습니다. 여름에는 미시시피 강 주변의 자전거 트레일을 따라 달리며 여행을 즐겼고, 가을에는 각 카운티별로 열리는 축제와 농산물 전시회를 방문했습니다. 카운티 페어와 Minnesota State Fair에서 만난 정겨운 풍경들, 별거 아닌 것 같은 행진과 놀이에 즐거워하는 사람들의 여유가 지금도 기억에 남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인상 깊었던 것은 세계 각국에서 온 젊은 의사들의 열정이었습니다.
중국, 인도, 이란, 이탈리아, 에콰도르 등 다양한 배경의 젊은 의사들이 앞날을 위해 밤늦게까지 실험하고 연구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습니다. 한편으로는 의정 갈등으로 인해 의학 교육이 멈춰 있는 한국의 현실을 떠올리며, 어디에도 뒤처지지 않을 우리의 젊은 인재들이 자유롭게 역량을 펼칠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되기를 간절히 바랐습니다. 

로체스티 풍경

연수 생활에서 가장 큰 벽은 언어였습니다. 저는 해외 생활 경험도 없고 영어를 문법으로만 공부한 세대인데다, 수줍음이 많은 성격 탓에 한국말도 가끔 버벅입니다. 나름 영어 학원 새벽반도 다니고, EBS 라디오 입트영, 귀트영도 매일 들으며 영어 공부를 지속해왔는데, 막상 미국에 가보니, 그렇게 배운 영어와 실제 생활에서 사용하는 영어와의 거리감이 컸습니다. 말을 하려 하면 입이 떨어지지 않았고, 그러다 보니 자꾸 말이 하기 싫어지기도 했습니다. 실험실에 있으면 말을 거는 사람도 없어서 ‘하루 종일 내가 말을 안 하면 1년 동안 말을 안 하고 지낼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까지 들었습니다. 

미국에 오면 영어가 쉽게 될 줄 알았는데 아니었습니다. 깨달은 건 미국에서는 내가 가만히 있으면 누구도 나에게 먼저 말을 걸어 주지 않으며, 내가 먼저 다가가야 한다는 것과, 언어는 문법보다 의사소통의 도구라는 것입니다. 문법이 맞지 않고 표현이 엉터리여도 입만 열게 되면 의사소통은 어느 정도 된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다가가려는 따뜻하고 긍정적인 태도야말로 진정한 세계 공통어라는 점이었습니다.


맺으며 

이번 연수는 단순한 연구 경험을 넘어, 새로운 곳에서의 생활, 연구자로서 자세를 다시금 되새길 수 있었던 시간이었습니다. 로체스터는 이제 제 마음속 두 번째 고향이 되었습니다. 끝으로, 제 부재 중 환자 진료와 교육을 맡아 주신 윤성로 교수님, 황원민 교수님, 박요한 교수님, 이지원 교수님, 송다운 교수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이번 연수에서 배운 소중한 경험을 바탕으로, 앞으로도 신장학 발전에 기여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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