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자라나는 병원, 함께 나누는 마음 장안내과의원 [25년 겨울호]
편집부
news@ksnnews.or.kr | 2025-12-11 14:15:19
원고를 제안받은 후 최근의 소식지들을 쭉 살펴보았습니다. 대부분 이제 막 개원하신 열정에 넘치는 원장님들의 이야기였습니다. 그런 글들을 읽다 보니, 올해로 개원 16년 차를 맞이한 제가 여기서 어떤 이야기를 나누면 좋을까? 한동안 고민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다 문득, 우리 병원의 지난 시간을 돌아보면서 우리의 ‘역사’라 할 만한 중심에는 늘 같은 키워드가 있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함께 성장하는 병원’, 그리고 ‘건강하고 밝은 병원’이었습니다.
오늘은 그 이야기를 조심스레 나누고자 합니다.
- 함께 성장하는 병원
병원을 운영하면서 가장 많이 고민하게 되는 부분은 언제나 ‘사람’이었습니다. 의료는 결국 사람이 사람을 돕는 일이기에, 병원의 전체 구성원들이 같은 방향을 바라보며 함께 성장해야만 진정한 의미의 발전이 가능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처음에는 여러 시도를 해보았습니다. 없는 시간을 쪼개어 직접 직원 교육을 진행하고, 전문 CS(고객 서비스) 강사를 초빙해 강의를 열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이런 교육들은 일시적인 효과는 있었지만 오래 지속되진 않았습니다. 결국 ‘스스로 성장할 수 있는 힘’을 길러주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결론에 이르렀습니다.
그 무렵 정진홍 작가의 『인문의 숲에서 경영을 만나다』 시리즈를 읽게 되었습니다.
이 책은 경영의 기술서가 아니라, 사람과 조직의 본질을 깊이 들여다보게 만드는 인문학적 통찰이 담긴 책이었습니다. 특히 병원 경영 측면에서는 스태프 등 ‘사람’의 역량과 열정, 그리고 조직문화가 가장 중요한 자산임을 상기하게 해주었고 인재 육성·동기부여·팀 문화 개선이라는 핵심 메시지는 제게 깊은 울림을 주었습니다.
이후 직원들이 책을 읽고 스스로 성장하는 문화를 만들어보자고 결심했고, 홀수 달마다 직원들이 미리 신청한 책을 한 권씩 선물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이 문화는 지금까지 15년 가까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초기엔 몰랐지만, 10년 이상 지속되면서 직원들의 분위기가 바뀌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고, 직원들의 책 선택 패턴으로 요즘 우리 직원의 관심사가 이렇게 변한다는 것을 직감하면서 소통하기 시작했습니다. 책 한 권이 인생을 바꿀 수 있다고 하지요, 20년 또는 30년 후의 직원들의 변화를 기대해 보는 대목입니다.
- 건강을 나누는 병원
투석 치료는 환자분들의 생명을 유지하게 해주는 필수적이고 희망적인 치료라고 생각해야겠지만, 아픈 이들로서는 ‘투석 없이는 살 수 없다’라는 생각으로 치료 과정 자체가 무겁고 어두운 짐이 되기도 합니다. 사실 치료를 꾸준히 받아도 어찌할 수 없는 합병증들이 발생하여, 길고 긴 치료 기간 동안 환자와 보호자들은 몸과 마음이 지치게 마련입니다.
그래서 저는 우리 병원이 조금 더 밝았으면 좋겠고, 환자들이 병원에 와서 에너지를 충전해 간다는 느낌을 받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왔습니다. 환자와 보호자, 뿐만 아니라 직원 모두가 서로의 삶을 응원하고 희망을 나누는 곳이 되기를 바랐습니다.
제가 회진 중에 환자분들께 가장 자주 하는 말이 있습니다.
“매일 꼭 밖에 나가서 햇빛을 보세요. 천천히 걸어보세요. 힘들면 잠시 쉬었다가, 또 걸으면 됩니다.”
뻔한 이야기로 들릴 수 있지만, 이제 이를 실천하는 환자분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습니다.
꾸준히 걷거나 자전거를 타는 환자분들도 많아졌습니다. 진심으로 기뻐서 칭찬과 격려를 아끼지 않으니, 선순환이 됩니다.
운동은 단지 체력만 좋아지게 하는 게 아니라, 만성질환을 가진 환자들의 숙면에도 좋고, 우울한 생각을 잊게 해주는 데도 큰 힘이 됩니다.
그런 마음은 직원들에게도 자연스럽게 이어졌습니다. 함께 걷고 달리며 몸과 마음을 돌보는 문화가 조금씩 자리를 잡았습니다. 2023년 세계 콩팥의 날을 기념하여 대한신장학회에서 진행했던 걸음 기부 캠페인에서도 병원 전체가 힘을 모아 단체 1등을 차지했습니다. 이런 경험은 우리 모두에게 자신감, 단체의 소속감, 그리고 긍정의 에너지를 주었습니다.
저 역시 코로나 이후 마라톤을 시작하였습니다. 학창 시절 오래달리기는 항상 꼴찌였던 제가 5km를 안 쉬고 뛸 수 있게 되었고, 2년 전 10km 대회를 시작으로, 지난해 하프 마라톤을 완주했고, JTBC 마라톤에서 처음으로 풀코스 마라톤 완주에 도전합니다.
마라톤은 참으로 정직한 운동입니다. 내가 노력한 만큼, 딱 그만큼의 결과를 보여줍니다. 거리와 속도에 상관없이 일단 뛰고 나면 매번 성취감을 안겨줍니다. 혼자 천천히 뛸 때는 명상이 가능하고, 다른 사람을 이길 필요도 없습니다. 단지 어제의 내가 있을 뿐이고, 중단하고 싶다는 나의 안일함만 이기면 됩니다. 누군가와 함께 뛰었을 때는 더 즐겁고 좋은 기록을 보여줌으로써 연대의 중요성을 깨닫게 해줍니다. 더운 여름의 훈련을 통해서 힘든 상황에서도 포기하지 않는 의지를 만들어주고, 추운 겨울의 훈련을 통해서 게으름과 싸우는 성실함과 자기 통제력을 다질 수 있습니다.
마라톤의 과정에서 느끼는 고통, 피로, 불안, 포기하고 싶은 마음 등은 투석 중인 환자들의 심리와 유사할 거라 짐작합니다. 이런 감정을 경험한 의료진이라면 환자의 힘들다는 말에 더 깊이 공감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요즘은 직원 중에서도 하나 둘 마라톤에 도전하는 이들이 늘고 있습니다. 서로 마라톤 대회 정보를 주고받고, 달리기에 필요한 시계 또는 신상 러닝화를 장만했다고 이야기 나눕니다.
마라톤 대회 당일 출발 직전에 느끼는 건강한 이들의 넘치는 에너지와 공기가 병원 안에서도 이어지고, 이런 기운이 환자들에게도 전해지면 참 좋을 것 같습니다.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가는 주로 위에서 달리다 보면, 저는 달리기와 만성질환의 치료 과정의 닮은 점을 자주 떠올립니다. 꾸준히, 함께, 그리고 포기하지 않으면서 나아가는 길, 그것이 바로 우리가 만들어가야 할 병원의 모습이 아닐까 싶습니다.
책을 읽고 달리면서, 건강한 마음과 건강한 몸으로 앞으로 수십 년 이상의 역사를 성실하게 써 내려갈 장안내과 인공신장실을 소망해 봅니다. 더불어 대한신장학회 회원들과 가족분들의 몸과 마음의 건강을 진심으로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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