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식 (전)대한신장학회 이사장과 강수지 전임의의 즐거운 만남 [25년 봄호]

편집부

news@ksnnews.or.kr | 2025-02-26 10:46:01

연민과 공감이 진료의 본질입니다

박정식 / (전)대한신장학회 이사장
강수지 / 서울아산병원 신장내과 전임의

박정식 (전)대한신장학회 이사장은 서울아산병원 신장내과 분과장과 내과장을 역임하며 진료와 연구, 교육에 헌신해 온 신장학계의 든든한 버팀목이다. 서울대학교병원 인턴과 전공의 과정을 거쳐, 한림대학교와 울산대학교에서 교수로 재직했으며, 캐나다 앨버타대학교에서 신장내과 임상 펠로우 과정을 수료하며 국제적인 연구 역량을 쌓았다.

박 교수는 환자의 말을 경청하고, 연민과 공감으로 다가가는 것이 진료의 핵심 덕목이라는 신념을 바탕으로 환자의 삶과 동행해왔다. 그는 언제나 환자에게 최선을 다하는 진료 철학을 강조하며, 신장내과 의사로서의 소명을 실천해 왔다.

후배인 서울아산병원 강수지 전임의의 질문을 통해 박정식 교수의 신장내과에 대한 열정과 진료의 소명, 그리고 환자를 향한 깊은 애정이 담긴 이야기를 들어본다.

Q1. 강수지 전임의
교수님, 퇴임 이후의 삶은 어떻게 보내고 계신지 궁금합니다.

A1. 박정식 (전)대한신장학회 이사장
2015년 9월 말, 대학을 정년퇴임한 후 2년 반 동안 서울아산병원에서 촉탁교수로 근무했습니다. 2018년 2월 퇴직 이후에는 평소 일반내과 의사로 일해 보고 싶다는 소망을 이루기 위해 방법을 찾아보았으나 뜻대로 되지 않았습니다. 대신 개인 종합병원에서 주 2회 신장내과 환자를 진료하며 지냈습니다.

2024년 4월부터는 의사로서의 활동을 마무리하고 독서, 산책, 평생 취미였던 야구 경기 관람 등을 하며 여유로운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특히 탐정소설에 관심이 많아서, 매달 5만원에서 10만원어치의 책을 구매해 읽고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작가 아가사 크리스티의 작품을 70편 이상 읽을 정도로 흠뻑 빠지게 되었습니다.

Q2. 강수지 전임의
신장내과 분과를 선택하신 계기가 있으신가요? 교수님께서는 신장학의 매력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A2. 박정식 (전)대한신장학회 이사장
학생 시절부터 외과 계통은 적성에 맞지 않는다고 생각했습니다. 제가 내과를 전공하게 된 이유는 강의를 들으면서 존경했던 선생님들이 대부분 내과 교수님들이었기 때문입니다. 또한, 전공의 1-2년차 시절 환자를 진료하며 가장 흥미로우면서도 어렵다고 느꼈던 분야가 ‘산-염기 이상과 전해질 이상’이었습니다. 이 분야를 깊이 공부하고 싶어 신장내과를 선택하게 되었습니다.

당시 신장내과는 비교적 새로운 분야였지만, 한국에서도 투석 치료와 신장 이식이 임상에 적용되기 시작한 초기 단계였습니다. 다른 분야에 비해 대단히 앞서가는 분야였다는 점도 신장내과를 선택한 이유 중 하나입니다.

신장학의 매력은 의학이 세분화된 오늘날, 내과 분야에서도 전공을 조금만 벗어나면 속수무책으로 다른 과에게 의뢰해야 하는 상황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신장내과 의사는 말기 만성 콩팥병과 신이식 환자를 진료하기 위해 내과 전 분야의 광범위한 지식을 갖춰야 한다는 점입니다. 이를 통해 환자에게 전인적인 도움을 줄 수 있다는 점이 신장학의 가장 큰 매력이라고 생각합니다. 


Q3. 강수지 전임의
신장내과 의사는 환자의 죽음까지 평생 함께하는 동반자라는 생각이 듭니다. 신장내과 의사에게 꼭 필요한 소양은 어떤 것이라고 보시나요?

A3. 박정식 (전)대한신장학회 이사장
최근 몇 가지 약제들의 효과가 보고되고 있지만, 대부분의 경우 신장 질환은 발생 원인을 근본적으로 치료하는 약이 없고 증상을 완화하며 말기 콩팥병으로의 진행을 늦추는 노력을 하게 됩니다. 따라서 신장내과 의사는 환자와 장기간 접촉하며 관계를 이어가게 됩니다. 

제 경험에 따르면, 한 환자를 너무 오랫동안 진료하다 보면 경우에 따라 조금 소홀해질 때도 있고, 질병 특성상 신기능이 끊임없이 저하되면서 어느 정도 체념한 상태로 투석이나 이식을 권하게 되는 상황이 생기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상황에서도 환자와 더 적극적으로 소통하며 보존요법을 시행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신장내과 의사에게는 이러한 자세와 환자와의 소통 능력이 꼭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Q4. 강수지 전임의
수십 년 동안 신장내과 환자를 돌보시며 가장 기억에 남는 환자가 있으신가요? 그 환자와의 특별한 이야기가 있다면 들려주실 수 있을까요?

A4. 박정식 (전)대한신장학회 이사장
기억에 남는 환자는 여러 명 있지만, 제가 평생 잊지 못할 환자는 서울에서 아주 먼 지방에 살면서 저에게 20회 이상 입원하고 외래는 150회 이상 다니면서도 한번도 짜증내거나 불평하지 않은 분입니다. 환자는 항상 “선생님이 하라는 대로 하겠습니다”라는 말로 의료진을 믿고 따랐습니다. 신장내과에 종사하는 분들이 읽을 테니 간단히 소개하겠습니다.

환자는 27세 때 MPGN으로 진단받았고, 3년 정도 지난 후 말기 콩팥병으로 이행되어 투석을 몇 개월 받았습니다. 이후 신이식을 받았으나 3년 후 사구체신염이 재발했고, 4년 뒤 다시 말기 콩팥병으로 진행되어 투석을 시작했습니다. 그 이후 환자에게 유방암이 발생했으며, 수술과 항암 치료 과정에서 hypercoagulable state가 심해져 혈관이 모두 막혔습니다. 결국 혈액 투석이 불가능하게 되어 복막 투석으로 전환하게 되었습니다.

그 이후에도 환자는 여러 합병증으로 수없이 응급 입원을 했음에도 항상 밝은 모습으로 의료진을 신뢰했습니다. 처음 사구체신염 진단을 받았을 당시 임신 중이었는데 무사히 분만하였고, 이후 또 한 아이를 낳아 힘든 투병생활 속에서도 두 아이를 훌륭하게 양육하였습니다. 

제가 퇴직하면서 이 환자와 헤어질 당시 환자의 나이는 55세였습니다. 이후 얼마 지나지 않아 환자는 병원에 더 이상 오지 않았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아마도 이제는 오랜 병고에서 해방되셨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이 환자를 떠올리면, 오랜 기간 많은 결정을 내려야 했던 순간들이 떠오릅니다. 그때마다 최선의 선택을 했는지에 대해 스스로 자책하는 일이 많았습니다. 무엇보다 그 오랜 시간 동안 환자를 따뜻하게 위로하거나 연민을 표현하지 못했다는 점이 늘 마음에 남습니다. 지금도 그 점에 대해 속죄하는 마음을 갖고 있습니다.


Q5. 강수지 전임의
교수님께서는 연구와 진료뿐만 아니라 학생 교육, 학회 활동까지 정말 다양한 역할을 해오셨습니다. 지금 돌이켜 보아도 가장 의미 있고 중요한 일이었다고 생각되는 순간은 어떤 것인가요?

A5. 박정식 (전)대한신장학회 이사장
임상의사의 가장 중요한 덕목은 환자 진료라고 생각합니다. 환자 진료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환자의 말을 들어주는 것입니다. 특별한 지식이 필요한 환자는 많지 않습니다. 환자에게 연민을 느끼고 공감해주는 것 보다 중요한 일은 없을 것입니다. 

교수 생활을 하다 보면 연구, 학생 교육, 전공의 교육, 학회 활동 등이 필요할 것입니다. 저도 그런 활동이 중요하다고 생각했지만, 돌이켜보면 환자를 최우선으로 생각하는 진료에 비하면 이러한 활동들은 부수적인 일에 불과하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교수 생활을 하며 학생과 전공의 교육을 소홀히 하는 분들이 종종 있습니다. 교육은 교수로서의 의무이면서도 동시에 특권이라는 마음가짐을 갖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Q6. 강수지 전임의
교수님께서 '명의'라는 명칭으로 불리신 것을 알고 있습니다. 이 같은 명성을 얻으신 비결이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후배들에게 전수해 주실 팁이 있다면 부탁드립니다.

A6. 박정식 (전)대한신장학회 이사장
명의라고 불린 적이 있었는지 모르겠으나, 그런 건 메스컴이 만든 아주 부적절한 표현입니다. 현대 의학에는 명의란 있을 수도 없고, 만일 있다면 환자에게 최선을 다하는 사람이 명의가 아닐까 싶습니다. 후배님들은 이런 명칭에 현혹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Q7. 강수지 전임의
만약 20~30년 전으로 시간을 되돌릴 수 있다면, 이전과는 다르게 더 해보고 싶거나 돌이키고 싶은 일이 있으신가요?

A7. 박정식 (전)대한신장학회 이사장
의사로서는 더 환자의 말을 잘 들어주고, 연민을 갖는 등 최선을 다하는 의사가 되고 싶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의학 분야 외의 책을 많이 읽거나, 정기적으로 운동을 열심히 하고 싶습니다.

그리고 종종 다른 사람들에게 무례했던 것이 후회됩니다. 특히 학회의 이사장으로 재직하던 시절, 학회원분들께 거칠게 대했던 일이 후회됩니다. 그분들 역시 열심히 노력하며 발표를 준비했을 텐데, 당시 경황이 없어 충분히 헤아리고 배려하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미안한 마음이 듭니다. 이 자리를 빌려서 진심으로 사과의 말씀을 전하고 싶습니다.


Q8. 강수지 전임의
마지막으로, 신장내과에서 활동 중인 후배들에게 전하고 싶은 조언이 있으시다면 말씀 부탁드립니다.

A8. 박정식 (전)대한신장학회 이사장
제가 퇴직할 무렵에는 신장내과를 지원하는 분들이 적어 걱정스러웠습니다. 그런데 요즘은 지원자가 늘었다고 하니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이유를 물어보니 고령화에 따른 투석 환자의 증가로 취업이 비교적 잘 되는 상황도 이유 중의 하나라고 들었습니다. 

그러나 투석실 환자만을 평생 진료하는 것은 많이 지루하고 힘든 일입니다. 따라서 신장내과의 분야를 넓히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이제는 특정 질병은 특정 과에서만 진료한다는 생각을 벗어나야 합니다. 

신장내과를 새롭게 시작하는 분들은 고혈압과 당뇨병에 대한 깊은 관심이 필수적입니다. 더불어 진료와 임상 연구 등을 적극적으로 수행해야 합니다. 과거부터 해오던 신장내과의 통상적인 영역뿐 아니라 Interventional Nephrology, Onconephrology, Critical Care Nephrology 등 더 넓은 분야에도 많은 관심을 가지고 적극적으로 참여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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