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석영 명예진료교수와 최원정 조교수의 즐거운 만남 [21년 겨울호]
편집부
news@ksnnews.or.kr | 2021-12-01 12:08:45
김석영 / 가톨릭대학교 대전성모병원 신장내과 명예진료교수
최원정 / 가톨릭대학교 대전성모병원 신장내과 임상진료조교수
김석영 교수는 3년 전 가톨릭대학교 대전 성모병원을 정년 퇴임했지만 여전히 같은 곳에서 환자를 돌보며 묵묵히 현장을 지키고 있다. 그는 최고의 실력을 쌓는 것이야 말로 의사의 가장 중요한 본분이라고 굳게 믿고 있었다. COVID-19로 쉽지 않은 나날을 보내고 있는 후배를 대표해 최원정 의사가 김석영 교수에게 조언을 구했다.
Q1. 최원정 조교수
안녕하세요. 가톨릭대학교 대전 성모병원에서 임상진료조교수로 근무중인 최원정입니다. COVID-19로 인해 얼굴 뵙고 안부를 여쭐 기회가 없었는데, 오늘 이렇게 직접 인사를 드릴 수 있게 되어 영광입니다. 교수님께서는 정년퇴임 이후에도 병원에 남아 지속적으로 근무를 하고 계시는데요. 최근 근황이 어떠신지 궁금합니다.
A1. 김석영 명예진료교수
제가 정년퇴임을 한 지 벌써 3년이 다 되어 가네요. 여러분들의 도움과 배려로 이곳에 계속 남아 근무하게 된 터라, 퇴임 전과 비교했을 때 크게 달라진 것은 없습니다. 예전처럼 외래 환자 보고, 입원 환자 돌보는 것이 저의 주된 일과입니다. 한편으로는 젊던 시절의 열정과 학문적인 열의가 조금씩 식어가고 있는게 아닌가, 예전에 비해 공부를 덜 하며 나태해지는 건 아닌가 스스로 경계심이 들기도 합니다.
Q2. 최원정 조교수
말씀은 그렇게 하셔도 늘 열심히 일하시고, 최신 질병 정보도 업데이트하며 항상 저희에게 모범을 보여주신다고 생각합니다. 교수님께서는 오랫동안 신장 내과 분야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해오고 계신데요. 이렇게 열정적으로 살아오실 수 있었던 원동력은 무엇이었는지 궁금합니다.
A2. 김석영 명예진료교수
저는 1986년에 신장 내과 과정을 마치고 서울에서 대전으로 내려왔습니다. 이곳에 올 당시 제 마음 속에 두 가지 포부가 있었습니다. 하나는 개인적인 포부인데, 우리나라 의학교육 특히 전공의 선생님들을 향한 교육 과정과 내용을 보편화 시켜서 국내 많은 병원에서 그 교육 과정을 펼칠 수 있게 하고 싶다는 것이었습니다. 이것은 상당한 수준의 외부 환경과 조건이 뒷받침되어야 하는 것이라, 지금 돌이켜보니 이루어지기 쉽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또 하나는 가톨릭대학교 대전성모병원에서 8년간 의무 원장을 지내면서 최선을 다해 환자를 돌볼 수 있는 분위기와 환경을 구축하겠다는 포부가 있었습니다. 저를 비롯해 모든 선생님들이 그러겠지만, 우리의 최종 목표는 환자가 건강을 되찾을 수 있도록 혼신의 힘을 다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때로는 의사 스스로 부족해지거나 안이해 질 수 있습니다. 이런 상황을 미연에 방지하고자 선생님들과 많은 대화를 나누며 설득하기도 하고 부탁하기도 하면서 우리 병원이 환자를 제대로 돌보고 책임지는 곳으로 자리매김 하도록 애써왔습니다. 이런 노력과 시간의 흔적이 쌓이며 오늘까지 이어져 온 것 같습니다.
Q3. 최원정 조교수
교수님께서는 신장학회에서도 큰 역할을 하셨습니다. 2012-2013년 대한신장학회장을 하셨을 당시 소감은 어떠셨는지 궁금합니다.
A3. 김석영 명예진료교수
일년이라는 짧은 시간이었지만 선배님이신 서울대학교 한진석 교수님과 좋은 인연을 맺고 열심히 소통하며 학회를 이끌어 나갔던 게 가장 기억에 남습니다. 아마 역대 신장학회 중에서 가장 열심히 이사회에 참석했을 겁니다. 거의 매번, 빠지지 않고 나갔죠. 이사장님도 많은 배려를 해주셨고 회장단과 이사님들의 열정적인 참여 덕분에 그처럼 좋은 분위기를 만들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정말 뿌듯하고 감사한 일년이었습니다.
Q4. 최원정 조교수
교수님은 현재 진료에 전념하고 계신데요. 옆에서 살펴보면 환자와 오랫동안 인연을 맺고 치료하신다는 생각이 듭니다. 20~30년간 한결같이 진료하는 환자도 많고, 환자와의 라포도 끈끈하신 거 같습니다. 후배들로서는 정말 배우고 싶은 부분인데, 어떻게 하면 이렇게 귀감이 되는 진료를 할 수 있는지 궁금합니다.
A4. 김석영 명예진료교수
환자에게 “인성은 좋은데 실력이 조금 부족한 의사와 인성은 아주 좋지 않은데 실력이 있는 의사 둘 중 어느 쪽을 고르겠는가?” 하고 묻는다면 십중팔구 후자를 선택할 것입니다. 환자 입장에서는 인성이나 품성도 중요하지만 결국 필요한 건 의사의 실력입니다. 물론 최고의 의사는 인성도 좋고 실력도 좋은 사람이겠지만, 이게 말처럼 쉽게 이루어지지는 않습니다. 오랜 시간 갈고 닦으며 연마해야 하는 것이지요.
의사가 실력을 키우기 위해서는 다양한 노력이 필요한데, 우선 전공의 시절부터 ‘절대로 남의 말을 믿어서는 안된다’고 조언하고 싶습니다. 전공의 때 몸이 많이 힘들고 피곤하더라도 반드시 자신의 눈으로 환자를 확인하고 처방을 내야한다는 마음 가짐으로 일해야 합니다.
두번째는 남에게 물어볼 줄 아는 의사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모르는 사항이 있으면 묻고 의논하는 것뿐만 아니라, 환자가 내 능력 범위 밖이거나 우리 병원에서 치료할 수 없는 상황이라면 다른 사람에게 소개시켜 줄 수 있어야 합니다. 그렇기 위해서는 학회에 열심히 나가 선생님들과 자주 만나 교분을 쌓아야 합니다. 그 사람의 장점이 무엇인지, 어느 부분에서 탁월한 실력을 지녔는지 알아야 환자에게 도움되는 판단을 내릴 수 있습니다.
제가 한창 일하던 때는 지금처럼 휴대폰이 있던 시절이 아니라서, 다른 선생님들께 뭐 하나 여쭤보는 것도 쉽지 않았습니다. 기차를 타고 서울로 올라가거나 차트를 들고 고속버스를 타야 했지요. 서울대학교는 병원으로 전화를 걸어 교수님과 연결하기도 쉽지 않았습니다. 병원 연결이 어려우면 댁 전화를 수소문해서 집으로 유선 전화를 걸곤 했는데, 교수님이 안 계시면 밤 11시 넘어 전화를 드려도 괜찮겠느냐 양해를 구한 후, 밤 늦게 전화를 걸어 도움을 얻곤 했던 기억이 납니다. 어떻게 해서든 환자에게 도움이 되는 일을 하려다 보니 그런 일이 벌어졌습니다. 사명감으로 똘똘 뭉쳐 있던 시절이었습니다.
Q5. 최원정 조교수
의사 생활을 하다 보면 갑작스럽게 위기가 찾아오기도 합니다. 저도 전임의 마친 지 몇 년 되지 않았을 때 힘들었던 기억이 납니다. 의사로서 위기가 찾아올 때 이를 극복할 만한 관리 방법이 있을까요?
A5. 김석영 명예진료교수
뾰족한 수를 찾기가 쉽지 않을 겁니다. 복잡하고 다양한 문제들이 겹쳐서 발생하는 경우가 많으니까요. 제 자신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처음 대학교수 발령을 받고 이곳에 내려왔을 때 다양한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우선 경력 관리가 쉽지 않았습니다. 직장에서 승급하려면 유학도 다녀와야 하고, 필요한 학위를 따려면 대학원 공부도 해야 하니, 일주일에 한 번씩 서울과 대전을 오가며 바쁜 나날을 보냈습니다. 한편으론 가정도 있으니 아내와 아이에게 소홀해서도 안되었구요. 그런 과정에서 위기가 찾아오면 직업적인 고민에 빠질 수 밖에 없었습니다.
이럴 때의 해결책은 결국 묻는 것입니다. 주변 사람들에게 물어보고, 스스로에게도 묻는 것입니다. ’지금 내 자신이 가장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가?’ 라는 질문을 던지는 것이죠.
제가 이곳에서 의무원장으로 일할 때 다양한 사정으로 대학교수직을 버리고 다른 곳으로 이직하려는 분들이 있었습니다. 더 크고 좋은 병원으로 가는 것이야 당연히 축하하며 보내드렸지만, 이 업을 포기하는 분들께는 진심으로 부탁드렸습니다. “선생님이 가장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 생각해 주세요”라고요. 떠나려는 분들의 마음 속 깊은 곳을 들여다보면 계속 이 일을 하고 싶어합니다. 그 본질을 건드리면 답이 나옵니다. 당시에 힘든 과정을 겪은 후 우리 병원에 지금도 남아 계시는 몇몇 분들이 있습니다. 저는 이게 가장 보람을 느낀 일이라고 생각해요. 가만히 생각해 보면 답이 나옵니다. 진짜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 스스로에게 물어보길 바랍니다.
Q6. 최원정 조교수
나중에 여유가 되면 ‘이것만큼은 꼭 해봐야겠다’ 하는 게 있으신지요? 취미 생활이 있으신지 궁금합니다.
A6. 김석영 명예진료교수
제가 예전에 수영을 좋아했습니다. 정기권을 끊어서 열심히 배우러 다녔죠. 그런데 배운지 3개월쯤 되었을 때 이유없이 머리가 아프고 안면통증을 느꼈습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축농증이었어요. 급성 부비동염 걸려서 한 달간 계속 약을 먹고 치료를 했죠. 그 후 수영장에 몇 번 다니면 예외 없이 증상이 재발했습니다. 당시 우리 병원 이비인후과 과장님이 저를 진찰하시더니 수영을 계속하고 싶으면 수술을 해야 한다고 하셨죠. 만약 수술을 하지 않으면 수영은 그만둬야 한다고요. 그래서 결국 수영을 포기했습니다. 그후 아이들과 몇 차례 수영장에 다닌 적이 있었는데, 금새 누런 코가 나오는 것을 보고 완전히 딱 끊었습니다.
여행은 좋아하는데, 기회가 많지는 않았죠. 해외에서 학회가 있을 때 아내와 아이를 동반해 다녀온 게 좋은 추억으로 남아 있습니다. 저는 후배나 동료에게도 학회 나갈 때 가족 동반해서 나가는 것을 적극 권장합니다. 학회 할 때는 열심히 공부하고, 끝난 뒤에는 며칠 여유를 내서 가족과 즐기다 오길 바랍니다.
Q7. 최원정 조교수
마지막으로, COCVID-19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후배들에게 따뜻한 조언 한 마디 부탁드립니다.
A8. 김석영 명예진료교수
처음 생각했던 목표를 끝까지 잊지 않길 바랍니다. 의사라는 직업은 나이를 막론하고 환자를 비롯해 그 가족들에게 무한 존경을 받는 직업입니다. 그 사람의 생명을 책임지고 있기 때문에 그런 삶을 살 수 있습니다. 그것이 의사로서 행복을 느낄 수 있는 중요한 요소입니다. 그러니 너무 쉽게 포기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아까도 말씀드렸지만, 실력을 연마하는 일을 게을리해서는 안됩니다. 남의 말을 전화로 리포트 받아 오더를 내리는 일은, 불가피한 상황을 제외하고는, 절대 해서는 안됩니다.
집에서 화초를 기를 때, 과일을 생산하고 벼를 키울 때, 혹은 소나 돼지 등을 키울 때 가장 중요한 건 주인의 발자국 소리입니다. 세상 만물은 주인의 발자국 소리를 들어야 소생하고 잘 자라납니다. 환자도 마찬가지예요. 담당 주치의 선생님 발자국 소리를 많이 들을수록 환자가 빨리 일어나고 회복될 수 있습니다. 이런 신념과 믿음으로 현장을 지키는 실력 있는 의사가 되어주길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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