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화의 시대, 변하지 않는 것을 지키며 [26년 봄호]

편집부

news@ksnnews.or.kr | 2026-03-05 13:37:25

곽상혁 / 곽상혁내과의원 원장

“안녕하세요. 대전에서 곽상혁내과를 개원하고 있는 곽상혁입니다. 충남대학교병원에서 전공의를 마친 뒤 공중보건의로 근무하게 된 고흥종합병원에서 인공신장실 진료를 시작하였습니다. 이후 대한신장학회의 특별규정으로 투석전문의를 취득하였습니다. 2004년 4월, 대전 근교에 개원하여 현재까지 개원의 생활을 지속하고 있습니다. 개원 초기 여러 에피소드를 겪었지만, 교수님들과 선배님들, 그리고 동료 선생님들의 도움으로 잘 헤쳐 나가면서 나름대로 보람 있는 시간을 보냈습니다. 조금이나마 우리 사회에 필요한 의사가 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인공신장실 진료 의사로서의 첫걸음

2001년 충남대병원에서 내과 전공의 수련을 마치고 지방 종합병원에서 공중보건의로 근무하게 되었습니다. 병원에 도착해 보니, 전에 근무하던 내과 선생님 세 분이 모두 이직한 상태였습니다. 준비할 틈도 없이 곧바로 인공신장실 진료를 맡게 되었는데, 솔직히 처음에는 막막했습니다. 하지만 투석 환자분들을 돌보면서 점차 신장내과에 매력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일주일에 세 번씩 만나다 보니 자연스럽게 환자분들의 일상을 알게 되었고, 매달 실시하는 검사 수치가 좋아지면 함께 기뻐하고 컨디션이 안 좋으시면 같이 걱정하게 되었습니다. 환자 한 분 한 분과 쌓이는 유대감이 저를 이 길로 이끌었던 것 같습니다. 당시에는 체계적인 교육을 받을 기회가 부족했기에, 공중보건의 기간 동안 주말마다 서울을 오가며 신장내과 연수강좌와 혈액투석에 대해 공부했습니다. 돌이켜보면 그때의 열정이 지금의 저를 만들어 준 것 같습니다. 스스로 부족함을 채우기 위해 더 많이 노력했던 시간이었습니다.


개원의로서의 삶

2004년 대전 근교에 곽상혁내과의원을 개원하면서 외래와 인공신장실 진료를 병행하기 시작했습니다. 개원 초기에는 모든 것이 낯설고 힘들었습니다. 수련을 받던 대학병원이나 근무하던 종합병원에 비해 인력이 턱없이 부족했고, 의사가 직접 환자 관리의 세세한 부분까지 챙겨야 했습니다. 별도의 지원 부서가 없다 보니 투석 정수실 관리부터 물품 구매, 의료 인력의 교육과 행정, 보험 청구까지 모든 것에 신경을 써야 했습니다. 개원 후 인공신장실에서 보내는 시간이 비교적 많아 환자 상태를 더욱 세밀하게 관리할 수 있어 좋았습니다. 하지만 혈액투석을 받는 환자가 늘수록 업무도 같이 늘어나는 속에서 탈진 상태가 되었고, 이대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새로운 방법을 모색하다

당시 의원에서 사용하는 전자 의무 기록 시스템은 오류가 많았고, 병원급 시스템에 비해 효율이 높지 않았습니다. 종이에 기록하던 인공신장실의 간호 기록은 형식적으로 작성되는 경우가 많았고, 투석 전 체중을 측정한 후 초여과량을 계산하는 과정에서 오류도 빈번했습니다. 혈액투석 환자가 늘어나면서 환자의 상태를 파악하고 처방을 내는 데 점점 더 많은 시간이 걸렸습니다. 이를 개선하기 위해 다양한 방법을 모색하다가 혈액투석기와 컴퓨터를 연결하여 혈액투석 데이터를 디지털로 관리하면 어떨까 하는 아이디어가 떠올랐습니다. 처음에는 단순하게 한두 주면 완성되리라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작업을 진행할수록 점점 더 복잡하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간호 기록, 처방 이력, 혈액 검사 결과 등 다양한 데이터가 연결되면서 시스템이 점점 더 복잡해졌습니다. 몇 년간 여러 가지 방법으로 디지털 혈액투석 기록지 개발을 시도했으나 아쉽게도 완성하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이 경험은 저에게 새로운 도전의 씨앗이 되었습니다.


초심으로 돌아가다

2013년, 우연히 대한의료정보학회 주관으로 진행하는 정보의학인증의 과정 안내를 보게 되었습니다. 평소 취미로 컴퓨터 프로그래밍을 해왔고, 의료정보학을 인공신장실에 접목하는 방법에 관심이 많던 시기라 망설임 없이 지원했습니다. 그곳에서 의료 데이터 표준, 유전체학, 인공지능 등 최신 동향을 공부하게 되었습니다. 덕분에 취미 수준에서 진행하던 프로젝트를 본격적인 학술 프로젝트로 업그레이드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당시 한참 진행 중이던 헬스아바타 프로젝트를 접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전에 시도했던 디지털 혈액투석 기록지와 상호 보완적으로 운용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면서 다시 한번 도전해 볼 마음이 들었습니다.


디지털 혈액투석 기록지를 완성하다

지난 경험과 의료 데이터 표준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새로운 방법으로 접근했습니다. 데이터 획득부터 단계적으로 시스템을 쌓아 가기로 한 것입니다. 먼저 디지털 헬스케어의 기반이 되는 전자의무기록부터 개발을 시작했습니다. 대학병원에서 차세대 전자의무기록 시스템 개발에 참여했던 여러 의대 교수님을 부산과 대구, 서울까지 찾아다니며 자문을 구했는데, 처음 뵙는 교수님들도 마치 오래전부터 알던 분들처럼 친절하게 설명해 주셨습니다. 전자의무기록을 무사히 개발한 후, 헬스아바타 프로젝트와 호환되는 디지털 혈액투석 기록지 개발을 본격적으로 시작했습니다. 의료 데이터 표준을 준수하여 외부 시스템과 연동하는 방식으로 구조를 바꾸었습니다. 인공신장실의 체중계, 혈액투석 기록, 간호 기록, 혈액투석기로부터 나오는 데이터, 매월 실시하는 혈액 검사 결과가 실시간으로 한곳에 모이고 갱신되도록 만들었습니다. 시대의 흐름에 맞추어 스마트폰이나 태블릿으로 침상 옆에서 모든 기록 업무를 처리할 수 있도록 구현했습니다. 완성된 시스템을 인공신장실에 설치하여 사용해 보니 간호 업무 효율이 눈에 띄게 향상되었습니다. 체중을 측정하면 침상 옆으로 바로 전송되고 초여과량이 자동으로 계산되면서 체중 관련 오류가 현저하게 줄었습니다. 무엇보다 간호사들이 "이제 계산 실수 걱정할 일이 없어서 좋아요."라며 기뻐할 때 보람을 느꼈습니다. 이 시스템은 2024년 서울에서 열린 아시아-태평양 신장학회 학술대회에서 전시 부스를 열고 시연하였는데, 해외에서 온 의료진들도 관심과 호평을 해주어 나름대로 의미가 있었습니다. 우리나라와 일본에 특허 등록을 마쳤으며, 계속 사용하면서 다듬고 있습니다.


디지털 기록을 넘어 인공지능으로

2016년 알파고가 등장한 이후, 대전의 대덕연구단지에서 인공지능 세미나가 정기적으로 열렸습니다. 늘 사람이 꽉 찰 정도로 인기였는데, 참석 자격에 제한도 없고 누구인지 묻지도 않아 그냥 가면 샌드위치와 커피를 얻어먹으며 강의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그곳에서 최신 인공지능 기술의 발전을 가까이에서 지켜볼 수 있었습니다. 2020년 현재 위치로 병원을 이전하면서 인공지능을 활용한 디지털 인공신장실을 본격적으로 운용하게 되었습니다. 혈액투석 데이터가 많이 쌓이다 보니 사람이 직접 데이터를 살펴보는 일이 점점 어려워졌습니다. 요즘은 챗지피티 같은 거대 언어 모델을 진료에 적용하는 방법을 연구하고 있습니다. 의료 데이터에서 개인 정보 보호가 매우 중요한 고려 사항이므로, 병원 내부에 시스템을 구축하여 혈액투석 데이터가 외부로 유출되지 않는 상태에서 안전하게 관리하고 진료에 활용하는 방법을 모색하고 있습니다.


변화의 시대를 맞는 인공신장실

미래학자 커즈와일은 지난 20년 동안의 진보가 20세기 전체의 진보와 비슷한 정도이며, 이 주기가 점차 짧아질 것이라 했습니다. 의료 환경도 급격히 변화하고 있고, 인공신장실 역시 예외가 아닙니다. 얼마 전 환자가 투석을 받던 중, "원장님, 오랫동안 여기 다니면서 다른 데 가고 싶단 생각을 안 해봤어요."라고 말해 주었습니다. 그 한마디가 지난 세월의 고생을 다 보상해 주는 것 같았습니다. 환자의 건강을 먼저 생각하고 환자와 공감하는 자세는 아무리 시대가 변해도 변하지 않는 의료인의 기본 덕목으로 남으리라 생각합니다. 개원 20년이 넘는 시간 동안 많은 변화를 겪었지만, 앞으로도 환자 한 분 한 분을 따뜻하게 돌보는 의사로 남고 싶습니다.

만날 때마다 좋은 말씀을 해 주시는 신장내과 교수님들과 대전충청지회의 여러 선배님, 그리고 동료 선생님들께 항상 감사드립니다. 특히 개원 초기부터 지금까지 함께해 온 인공신장실 간호사들과 직원들에게도 고마운 마음을 전합니다. 저의 경험이 개원을 준비하시는 선생님들께도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기를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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