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장이 멎기 전, 안녕 내 사랑》 도서 출간 이야기 [23년 봄호]
편집부
news@ksnnews.or.kr | 2023-03-03 18:02:32
2022년 제21회 한미수필문학상 공모에 “합력하여 선을 이루는 기적-뇌사자 장기기증”이라는 제목으로 응모한 수필이 우수상으로 선정되어 오백만 원의 상금을 받게 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초등학교 때부터 이제까지 글짓기 상을 한 번도 받아 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깜짝 놀랐다. 그리고 이 글을 읽고 다른 병원의 후배 의사들 중에 이 귀한 일을 담당해 줄 의사가 생기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41년간 의사 생활을 하면서 “내가 아니었으면 사망했을 환자를 살렸다”라고 말할 수 있는 환자는 많지 않았다. 내가 아니어도 나보다 더 훌륭한 다른 의사가 살렸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기증을 생각하지도 않았거나 망설이는 가족들을 설득해 기증받은 장기로 새 생명을 얻게 된 얼굴도 모르는 환자들은 내가 살리는데 큰 도움을 줬다고 감히 말할 수 있다. 나중에 내가 죽어서 하나님께서 “너는 죄가 이렇게도 많은데 혹시 무슨 선한 일을 한 적이 있으면 말해 봐라”라고 물으실 때 “저는 뇌사자 가족들에게 가끔 심한 욕을 얻어먹기도 했지만 장기를 기증하도록 끈질기게 설득하여 말기 환자들이 새 생명을 얻게 하고자 노력을 했습니다”라고 말씀드려 볼 생각이다.
<60대 남자 환자가 폭행을 당해서 뇌사에 빠졌다. 외인사여서 야간에 응급으로 전주지검에 검시 전 적출 승인을 요청하였으나 환자가 향후 부검이 필요하여 적출이 불가하다는 통지를 받았다.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새벽 1시에 내가 전주지검에 달려가서 당직 중인 백수진 검사를 만났다.
환자의 사인은 뇌출혈이고, 기증할 장기는 간과 신장이기에 만약 복부를 절개하여 장기적출 수술을 시행한 후에 부검을 진행해 주시면 좋겠다고 말하고 간을 기다리는 환자는 이 환자의 장기를 못 받으면 사망할 수밖에 없다고 간청하였다. 다행히 백 검사께서 바로 부검 영장 신청을 내주셨다. 아침에 법원에 가서 사정을 하니 판사께서 바로 영장을 발부해 주셔서 다시 검찰에 가니 백 검사께서 즉시 장기적출 승인을 해주셔서 2개의 신장과 2개의 각막을 적출하여 환자들에게 이식수술이 성공리에 진행되었다.
그 후 피부, 뼈, 연골, 심장판막, 혈관 등 조직까지 적출했는데 이 조직들은 냉장 보관을 했다가 필요시에 뼈암 환자나 화상 환자 등 필요한 백여 명의 환자들에게 이식되게 된다. 조직기증까지 끝난 후에 부검이 실시되었고 이후 무사히 장례를 치를 수 있었다. 일반적으로 부검 예정인 환자는 장기기증을 할 수 없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기증할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
우수상을 받고 나서 용기를 얻어 내친김에 집필에 매진하여 530쪽짜리 책을 출간했다.
[내 책을 말한다]
나는 전북대학교병원에서 1989년부터 이식 환자를 진료해왔고 1998년부터 2021년에 정년퇴직할 때까지 23년간 뇌사상태에 빠진 환자의 가족들을 만나서 상담하고 장기기증을 권유하는 일을 해왔다. 당시에 이렇게 뇌사환자의 가족들을 만나서 설득을 전담하는 의사는 우리나라에서 나밖에 없었다. 이 일은 자원해서 했던 일이어서 병원으로부터 정식 직책이나 수당도 없었다.
뇌사환자의 가족들이 의사로부터 가장 듣기 원하는 말은 상태가 아무리 비관적이더라도 기적이라도 바라고 최선을 다하겠다고 하는 말이지 희망이 없으니까 포기하고 다른 사람을 살려달라는 소리는 전혀 아니다. 얼굴에 아직 혈색이 돌고, 심장도 뛰고, 체온을 유지하고 있고, 소변이 펑펑 쏟아지고, 호흡기에 의존해서라도 숨을 쉬고 있으며, 따뜻한 체온이 유지되고 있는 자식, 형제 혹은 부모님을 뇌파가 평탄해서 뇌사에 빠졌고 만에 하나라도 회복할 희망이 없다는 의사의 말을 믿고 덜컥 장기를 기증하려고 하는 사람이 얼마나 있겠는가?
다만, 이미 전혀 희망이 없다니까 죽어가는 다른 사람이라도 살리자는 숭고한 이타심에서 어렵게 기증을 결심하는 분들이 대부분이다. 초창기에는 장기기증 소리가 나오자마자 자리를 박차고 나가거나 화부터 내시는 분이 많았다.
어떤 아버지는 아드님의 장기를 기증해 줄 수 없겠느냐고 하자 “박 교수가 장기를 기증하면 나도 내 아들 장기를 기증하겠소” 해서 “저는 아직 살아있고 지금 장기를 기증하면 죽게 되는데요” 하니까 “그건 내 아들도 마찬가지요”라는 대답을 듣고 포기한 적도 있었다.
뇌사자 장기기증 문화가 옛날보다 확산되기는 하였지만 우리나라는 아직도 ‘부모님께 받은 신체를 훼손하지 않는 것이 효의 시작이다’라는 전통적인 유교 사상으로 인해 복부를 열고 장기를 기증한다는 데 대해 강한 거부감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유럽이나 미국에 비해 훨씬 어렵다.
환자분들이 뇌사자로부터 신장을 기증받으면 수술방에서부터 안 나오던 소변이 콸콸 쏟아져 나오면서 모든 증상들이 한꺼번에 사라지고 열흘 후에 건강하게 퇴원한다. 간이식을 받으면 심한 황달이 보이고 복수가 차서 배가 불러오고 피를 토하고 의식도 혼미하던 환자가 뇌사자로부터 간이식을 받고 모든 증상이 없어지고 건강하게 퇴원하는 것, 나는 이것이 바로 기적이라고 생각된다. 뇌사자로부터 장기기증을 받은 분들은 로또에 당첨된 것보다 더 기뻐한다.
이 책의 주제인 장기기증 이야기에 앞서 그동안 신문과 잡지에 기고했던 글과 내가 경험했던 일 중에서 재미있다고 생각하는 것들을 같이 실었다.
나는 학생이나 의사들을 상대로 장기기증에 대해서 강의를 할 때 꼭 물어보는 것이 있다. 뇌사추정 환자 가족이 장기기증에 동의하면 뇌사판정위원회에서 뇌사 판정을 받고 몇 시간 후에 수술실에 들어가서 기증을 하게 되면 심장이 멈추게 된다. 의사가 사망진단서에 사망 시각을 쓸 때 ‘뇌사 판정을 받은 시간을 쓰겠나?’ 아니면 ‘수술실에서 심장이 멈춘 시각을 쓰겠나?’라고 물으면 대부분 의사들이 심장이 멈춘 시각을 쓴다고 대답한다.
그러나 우리나라 법에는 심장이 뛰고 있어도 뇌사 판정을 받은 시각을 사망 시각으로 쓰게 되어 있다. 이것은 뇌사 판정을 받으면 이미 뇌가 전혀 기능을 하지 않기에 살아날 수가 없고 사망한 것과 다름이 없다는 말이다. 그래서 장기기증을 하는 가족들은 사랑하는 사람의 심장이 멎기 전에 가슴이 찢어지는 슬픈 이별을 해야 한다는 것을 알리고 싶어서 책 제목을《심장이 멎기 전, 안녕 내 사랑》으로 정했다.
제일 어린 기증자는 5개월 아기였고 최고령 기증자는 85세의 할아버지였다. 첫 기증자인 37세 박배영씨는 결혼을 2주 앞두고 신방을 꾸미느라 장롱을 옮기다가 2층 난간에서 떨어져서 뇌사에 빠져 심장, 간, 신장, 각막을 기증하고 영면하셨다. 세 분의 환자가 뇌사자로부터 신장을 이식받고 오랫동안 잘 쓰고 살다가 본인이 뇌사상태에 빠져 간장을 기증하여, 받은 사랑을 다른 환자들에게 더 귀한 선물로 돌려주는 일도 있었다.
많은 의사가 장기기증이 불가능하리라고 생각하는 혈액투석 환자 중에서 일곱 분이 간과 폐를 기증하셨다. 한 번은 남편의 장기를 기증해 달라는 나를 죽여 버리고 싶었다가 마음을 바꿔 기증하신 분도 있었는데 나중에 기증을 해서 슬픔을 극복하는데 큰 힘이 되었다고 말했다. 또 17년간 모시고 살았던 시어머니가 병원에서 며느리의 머리채를 잡고 흔들며 “절대로 내 아들의 장기를 기증하지 마라”라고 소리를 치는데도 마음을 바꾸지 않고 기증하신 분도 있었다.
20세 딸의 모든 장기를 기증해서 아홉 명에게 새 생명을 준 최해라 씨 어머니는 다른 분이 기증에 회의적이어서 내가 부탁하니까 “꼭 기증하세요. 절대 후회하지 않아요”라고 권유해서 그분이 믿고 기증하기도 했다. 가족이 며칠 내에 사망해서 화장이나 매장을 하면 영원히 이 세상에서 사라지게 되지만 그 심장, 폐, 간, 신장, 췌장, 각막 등이 죽을 수밖에 없는 환자들의 생명을 살리고 그 누군가의 몸속에 있으면서 이 땅 위를 걸어 다니고 있다는 사실이 큰 위안을 주기 마련이다. 나는 이제까지 수많은 가족들을 기증 전후에 만나 보았지만 기증하기 정말 잘했다는 분들이 대부분이었지 조금이라도 후회가 된다는 분은 만난 적이 없다.
20세 된 김광명 이란 분은 헌혈을 오십 회 이상 하신 분이다. 그러다 불의의 오토바이 사고로 장기기증을 했는데 어머님께서 친구들이 낸 부의금 236만 원을 아들이 좋은 곳으로 갔을 것이라고 감사하다고 이식센터에 기부를 하시려 하는 것을 형편이 넉넉하지 않으신 것 같아서 다른 곳에 쓰시라고 돌려드렸는데 가다가 주차장 관리실에 기부해달라고 맡기고 가셨다.
뇌사자 장기기증이 활성화되기 위해서는 장기기증 희망등록이 늘어나야 된다. 등록을 하려면 본인이 인터넷으로 국립장기조직혈액관리원에 들어가서 입력을 하면 되고 등록 후 운전면허를 취득하거나 갱신할 때 민원실에서 신청하면 면허증 왼편 하단에 ‘장기기증’이라고 표시할 수 있는 좋은 제도가 생겼지만 이를 아는 사람도 드물고 이렇게 표시한 운전자는 극소수에 불과하여 좀 더 적극적인 홍보가 필요하다.
이 책을 통해 이제까지 장기를 기증해 주신 가족분들께 조금이나마 위로와 감사를 전하는 기회가 되었으면 좋겠다. 글을 쓰기 위해 기증자 가족들을 만나거나 전화 통화하면서 가슴 아픈 사연에 여러 번 눈물을 흘렸다. 여러 어머니들이 오랜만에 자식의 이름을 듣고 울먹이며 잠시 말을 잇지 못했다. 내가 생각하기에 장기기증자는 본인이 사망하면서 다른 여러 사람들을 살리기 때문에 의인(義人)이라고 생각한다. 이분들은 말 그대로 살신성인(殺身成仁)의 삶을 실천하신 것이 아닌가?
이 책은 슬픔을 사랑으로 승화시키는 의인(義人)들의 숭고한 삶과 희생 이야기이다. 또 독자들에게 뇌사자 장기기증이 무엇이고 기증하는 가족들의 극심한 슬픔을 숭고한 사랑으로 승화시키는 희생에 대해서 증언하고자 한다. 이 책을 읽고 더 많은 분이 장기를 기증함으로써 장기이식 외에는 치료법이 없어서 장기기증을 학수고대하고 있는 말기 중환자들이 새 생명을 얻을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책을 원하시는 분은 메일로 주소를 보내 주시면 무료로 책을 보내드리겠습니다. parksk@jb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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