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원석 / 도앤김연합내과의원 원장
안녕하십니까. 저는 작년 9월, 대구광역시 서구 비산동에 ‘도앤김연합내과의원’을 개원한 도원석입니다. 신장과 위장을 형상화한 저희 병원의 로고처럼 신장내과를 담당하는 저와 내시경, 소화기내과를 담당하는 인생 동반자, 김아림 원장과 함께 하고 있습니다. 개원한 지 한 해도 되지 않아 여전히 어설프고 부족한 부분도 있지만 저를 아껴주고 믿어주시는 모교 경북대학교 교수님들과 파티마병원의 과장님들께 부끄럽지 않도록 항상 환자 한 분 한 분 최선을 다하려 노력하고 있습니다. 저에게 이렇게 대한신장학회에 인사드릴 수 있는 과분한 기회를 주셔서 영광이며 무한한 감사를 드립니다.
“대장내시경하고 싶은데 겁이 나서 고민이 돼요. 대장약 먹어도 괜찮나요?“
“건강검진을 하고 싶은데 어디서 하면 되나요?“
신장실 회진 중 가끔 환자나 보호자에게 듣던 질문입니다. 이런 질문을 마주할 때면 여러가지 생각이 들었습니다.
의료기술의 발달과 의료 접근성 향상으로 말기신부전 환자의 기대수명이 늘어난 만큼, 이제는 우리 환자들도 일도 하고, 여행도 가고, 취미도 갖고, 멋진 삶을 살 수 있으며, 또 그런 인생을 위해 적극적인 조기암 진단도 해드려야 하는 시대구나 하는 감격스러움과, 이러한 발전에도 아직은 '병도 많고 먹는 약도 많은' 이른바 '쉽지 않은' 우리 환자들을 기껍게 내시경 해 줄 병의원이 생각만큼 흔치 않다는 것에 대해 어떻게 설명을 해야 할까 하는 난감함이 같이 들었습니다. 종합건강검진센터가 있는 2차 종합병원에서 근무할 때조차도 같은 병원 투석실 환자들에게 대학병원에서의 진료 및 검진을 권유해야 하는 상황에선, 괜한 서러움마저 들었습니다.
전임의 과정 이후 줄곧 종합병원에서 근무하였는데, 특히 급성기 환자분들을 치료하고 다행히도 잘 회복되어 퇴원하실 때 보람을 많이 느꼈습니다. 하지만 “이제 우리 원장님한테 가서 투석하면 되지요?” 하시며 퇴원하는 환자분들을 보면 괜히 '부럽다. 나도 ‘우리 선생님’이 되면 참 좋겠다'라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소위 대구 수성학군에서 나고 자라오면서 부모님 뜻에 크게 어긋나지 않게 살았고 남중, 남고를 거쳐 의대, 전공의, 전임의 등을 거쳐온 저는, 부끄럽게 고백하건대 범생이었습니다. 사춘기는 딱히 없었으며 그때 그때 열심히 해서 그 과정이 끝나면 무엇이라도 하나 더 할 줄 아는, 조금은 더 멋진 사람이 되어 있을 거라는 막연한 기대로 앞만 보고 살았습니다. 그런 제가 40살을 앞두고 사십춘기를 제대로 앓았습니다.

아직도 나는 부족하고 할 줄 아는 게 많이 없고, 가끔은 그게 제도나 상황의 한계에 의해서이기도 하지만 스스로의 미숙함 때문이기도 하고, 이미 개원한 동기는 무언가 모르게 어른 같아 보이기도 했습니다. 나는 여전히 시키는 것만 해야 하는 건가, 심지어 때로는 그게 내 기준과 가치관엔 정당하지 않은 것이라도 일이고 직업이니 당연히 해야만 하는 걸까, 나만 제자리걸음인 것 같고 스스로 참 재주가 없는 사람인 것 같다는 못난 생각조차 들었습니다.
그런 생각을 할 때마다 소화기내과 수련을 한 인생 동반자께선, "신장내과 선생님께서 다른 것도 머리 많이 쓰셔야 하는데 그런 것까지 고민하셔야 되겠느냐. 내시경 같은 건 내가 알아 하면 되지. 그리고 당신은 어느 누구보다도 진심을 다해 환자를 대하는 멋진 사람”이라며 듬직한 답과 위로와 용기를 주어서 어쩌면 적어도 내 환자들에게만큼은 내시경 진행 과정의 불편함을 줄여줄 수도 있고, 부족한 나지만 오랜 시간 곁에 있는 주치의가 되어 볼 수도 있겠다는 작은 소망 같은 바람을 갖게 되었습니다.
고민과 소망이 뒤엉켜 구르고 뭉쳐 마침내 개원을 해야겠다는 다짐을 하고는 작년에 동반자 김선생과 함께 개원을 하게 되었습니다. 꿈이 컸던 내과 전문의 두 명은 신장내과와 소화기내과라는 각자의 전문 영역에서 양질의 진료를 하고 싶었으며, 환자와 직원의 동선을 생각해서 외래, 건강검진센터, 인공신장실을 한 층에 같이 할 넓은 공간, 투석기 배수가 더 잘 되기 위해 배관을 바닥 아래로 내릴 것, 접근이 용이한 위치, 주차시설이 충분할 것, 친절하며 경력 많은 간호인력, 우수한 새 장비들, 안전한 치료를 위한 추가 설비, 이동 시 소음과 흔들림이 적은 카트와 침대, 편안한 음향설비, 마음에 위안이 될 수 있는 인테리어 등 어느 것 하나 포기할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감히 포기하지 않고 화려하고 거창하진 않지만 내실을 공고히 하고자 하는 제 이상이 충분히 반영된 공간을 만들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메르스, 독감, 코로나 확산을 경험하면서 감염관리의 중요성을 너무나 잘 아는 원장들과 직원들이라 1인 격리투석실, 1회용 소독약과 투석액, 매번 베개커버 침대 시트를 교체, 검진센터에도 1회용 내시경 기구는 물론, 세척용 주사기, 심지어 세척액 담는 용기도 1회용, 1회용 치마, 바지, 소독포, nasal cannula 등을 아낌없이 준비하여 좀 더 안심하고 좋은 치료를 받고 가실 수 있는 병원이 되도록 노력하였습니다.
직원 모두가 동반자적 마음으로 행복하고 즐겁게 일하는 직장, 환자에게는 따뜻하고 편안하게 좋은 치료를 받고 가는 병원, 어쩌면 현실적으론 불가능한 일이지만, 그래도 노력해서 엇비슷하게 또는 그럴듯하게 흉내라도 내어보자 하는 목표가 생겼습니다. 개원 선배분들께서 개원은 현실이라고 해주신 말씀처럼, 세상 물정 모르는 범생이에게 쉬운 것 하나 없었지만, 그래도 꿈과 함께 하는 이들이 있으니 마음은 복잡하지 않아서 행복한 요즈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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