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연(天然)이란 사람의 힘을 가하지 않은 그대로의 상태를 이르는 말로 자연이 만들어 준 아름다운 꽃과 나무들로 만들어진 숲길에 아주 잘 어울리는 단어다. 뜨거운 여름 날씨에 더위를 피해서 나무가 만들어 주는 그늘 속에서 피톤치드 풍부한 공기를 마시며 아름다운 야생화들을 친구 삼아 걷는다면 말 그대로 금상첨화다. 강원도를 대표하는 곰배령 숲길, 자작나무 숲길, 만항재 숲길은 아름답고 걷기 좋은 천연 숲길이다.
곰배령 대평원의 아름다운 야생화와 숲이 만드는 천상의 화원! 곰배령 숲길
강원도 인제에 있는 해발 1,110m의 곰배령은 배를 하늘로 향하고 누운 곰처럼 생겼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100 여종이 넘는 야생화들이 사시사철 피고 지고를 반복하는 야생화 천국이다.
다음날 산행을 위해 곰배령의 시작점인 설피(雪皮) 마을에서 1박을 하기로 한다. 겨울에 신던 덧신인 설피란 이름이 붙은 것만 봐도 얼마나 눈이 많이 내리는 지역인지를 짐작하게 한다. 작년에도 눈이 성인의 키만큼 쌓였다는 펜션 주인장의 과장 섞인 말이 그대로 미덥다. 숙소의 보일러 트는 법부터 가르쳐 주시는데, 집에서 한여름의 더위에 시달렸던 것을 생각하면 아이러니하게 느껴진다.

곰배령 입구에 있는 생태관리센터에서 신분증을 확인 후 입산 허가증을 받아 숲속 여행을 시작한다. 입구에서부터 울창한 나무들로 숲 그늘이 만들어진 나무 터널을 따라 계곡의 물소리를 음악 삼아 천천히 걷는다.

나무 중의 나무라 할 수 있는 근육질의 서나무, 나무껍질을 섬유로 사용하여 이름이 붙여진 피(皮)나무, 나뭇잎이 2개면 가위요 이것이 소나무, 5개면 보자기 이것이 잣나무라는 숲해설가분의 열강이 귀에 쏙쏙 들어와 박힌다. 길가에 고인 물에는 알에서 부화한 도롱뇽의 유생들이 노닐고 있다.
강선마을을 지나 예쁘게 놓아진 징검다리를 건너면 본격적인 산행이다. 좁은 오솔길 양쪽으로 조릿대들이 늘어서 반겨주고 멀리서 들려오는 작은 폭포수 소리에 발걸음이 가벼워진다. 주변의 울창하고 푸른 나무숲과 나무 아래 군락을 이룬 관중들의 행렬은 이곳이 진정한 원시림임을 말해준다.

초록빛 잎들 사이로 각양각색의 꽃들이 살포시 얼굴을 내밀고 있다. 헉헉 거친 숨소리로 숨이 턱 밑까지 찼다고 느껴질 무렵 머리 위의 나무 그늘이 서서히 사라지고 푸른 하늘이 반겨준다. 곰배령 대평원에 다다랐다는 신호다.

곰배령 정상의 야생화 정원은 형형색색의 야생화들이 어우러져 신이 내린 아름다운 꽃밭이다. 비록 꽃집의 꽃들처럼 화려하지는 않지만 수수하고 정겨운 꽃들의 모습은 깊은 여운을 남긴다. 예쁜 웃음을 떠올리게 하는 분홍빛의 둥근이질풀, 화려함을 뽐내는 주황색의 동자꽃, 나물로 잘 알려진 노란색의 곰취, 보랏빛 꽃으로 길게 늘어선 긴꼬리산풀, 순백의 흰 꽃을 자랑하는 어수리와 톱풀, 봉선화처럼 건드리면 씨앗이 사방으로 퍼져나가는 물봉선, 엷은 남보랏빛의 수줍은 얼굴을 가진 금강초롱까지 정말 다양한 꽃의 천국이다.

야생화들의 아름다운 세계를 맘껏 즐기고 내려오면서 시원한 산바람을 맞으니, 무더위가 달아나는 느낌이다. 건강한 숲 내음을 마시며 올라갈 때 놓치고 지나간 풍경을 감상하다 보니 강선마을 입구가 나타난다. 텃밭에 빽빽이 늘어선 노란 곰취꽃들과 울타리에 핀 화려한 원추리꽃이 천상의 화원을 내려온 아쉬움을 달래준다. 입구에 있는 야생화 정원에서 예쁜 꽃 이름들을 다시 되새기며 10km, 4시간여의 행복한 일정을 마감한다.
초록 숲길과 은빛의 자작나무 조화가 빚어낸 환상의 원대리 자작나무 숲길
자작나무는 은백색의 화려한 외모에 하늘을 향해 쭉쭉 뻗어 가는 훤칠한 몸매를 자랑하는 나무 중의 여왕이다. 시베리아를 배경으로 하는 영화 속에 한 장면으로 하얀 눈 위에 일렬로 늘어선 자작나무 풍광은 가위 인상적이다. 추운 곳에서 자라는 자작나무는 백두산에 오르면 가장 흔히 보이는 나무로 순수함과 고고함의 상징이다. 남한에서는 강원도 산간지방에서 볼 수 있으며 그중에서 인제 원대리는 대표적인 자작나무 군락지다.
자작나무 숲 주차장에 도착해서도 그칠 줄 모르는 비를 잠시 원망하며 우비를 입고 나선다. 산길 가에 비를 맞아서 색깔이 더욱 선명해진 야생화들과 풀잎 위에 맺혀진 물방울들을 모델로 작품을 만든다. 널따란 나뭇잎을 가만히 보니 잎 뒤로 비를 피해 붙어있는 노린재들이 가득하다. 마치 숨바꼭질 놀이를 하며 술래 몰래 숨어있는 아이들의 모습이 연상된다.
습한 느낌에 우비를 벗고 우산을 쓰고 임도를 따라 오르는데, 어디선가 아주 익숙한 목소리로 내 이름을 부른다. 대학 동창 친구가 부인과 함께 여행사 코스로 와서 벌써 숲을 둘러보고 내려가는 중이다. 친구와 안부 인사 후 한 걸음 한 걸음 오르면서 보니 길 위 언덕으로 자작나무들이 하나둘씩 보이며 숲이 가까워졌음을 알려준다. 왼쪽으로 작은 갈림길이 나타나고 이곳이 바로 자작나무 진입코스의 시작점이다.
오솔길을 따라 걸으니 멀리 보이기 시작하는 은빛 자작나무들이 열을 맞춰 일렬로 늘어서 손 흔들며 빨리 오라고 한다. '당신을 기다립니다'라는 꽃말처럼 우리가 오기를 애절히 기다려 준 느낌이다. 자작나무는 껍질이 종이처럼 하얗게 벗겨지고 얇아서 여기에 연인끼리 사랑의 글을 썼던 낭만적인 나무다. 기름기가 풍부한 껍질은 불이 잘 붙어 불쏘시개로 유용하게 쓰였으며 나무의 이름도 ‘자작자작’ 소리를 내며 탄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자작나무 사이로 난 오솔길을 주인공으로 멋진 작품을 만들어 보고 우리 부부의 기념사진도 남긴다. 언덕 한편에서는 예쁜 추억의 사진을 찍느라 젊은 연인들이 셔터를 정신없이 누른다. 주변이 모두 자작나무로 채워지니 나도 모르게 감탄을 연발하며 이곳을 환상의 숲으로 부르는 것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전망대에서 아름다운 풍광을 천천히 둘러보고 광장으로 가서 자작나무로 만든 예쁜 집을 사진 속에 담는다.
돌아가는 길은 숲 내음을 더 즐길 수 있는 탐험코스로 정하고 계단을 따라 내려간다. 계단을 중심으로 양측으로 펼쳐진 자작나무 군락이 멋지고 화려한 풍경을 선물한다. 자작나무와 아쉬운 이별을 하고 계곡을 따라 이어지는 숲 터널로 접어든다. 나무들 사이로 바삐 오가던 다람쥐가 초록 잎에 반사된 조명을 받아 온몸이 녹색으로 물들었다. 숲길이 끝나고 임도로 들어서니 길가에 핀 꽃들에 벌과 나비들이 가득하다. 안내소 광장으로 돌아와서 자작나무로 만든 조각상들을 감상하며 3시간 환상의 숲길 여행을 마무리한다.
자연이 만든 야생화들의 천상 화원과 아름다운 숲길이 빚어낸 만항재 숲길
국내에서 자동차로 오를 수 있는 가장 높은 길이 어디일까? 가장 먼저 떠오르는 곳은 가장 높은 산인 한라산의 1,100고지다. 하지만 이보다 더 높은 곳이 강원도에 있다. 태백과 영월, 정선이 만나는 함백산 자락에 있는 만항재는 해발 1,330m로 차로 갈 수 있는 가장 높은 곳이다.
오늘의 걷기 코스인 만항재는 한여름에도 평균기온이 21℃인 만큼, 피서지로는 국내 최고라 자부한다. 인터넷으로 이곳 정보를 알아보는 중에 여름이라도 간단한 외투를 준비하라는 말에 설마 했는데 아침저녁으로는 필수품인 것 같다.
태백시 중심가를 벗어나 꼬불꼬불 고갯길로 오르면서 차창 너머 보이는 산들의 풍광은 새벽안개에 둘러싸여 정말 아름답다. 쉼터인 오투전망대에 차를 세우고 본격적으로 경치를 감상한다. 멀리 내려다보이는 건물들이 구름을 친구 삼아 우리와 숨바꼭질하잔다. 잠시 후 구름 사이로 햇살이 나오기 시작하더니 영화의 한 장면처럼 마을 하나만을 환히 비춰 축복해준다. 운해 위로 띄워져 있는 한 폭의 산수화를 바라보며 나도 모르게 감탄의 연발이다.
고갯길을 따라 좌우 코너링을 반복하다 보니 큰길로 들어서고 만항재 표지석이 있는 만항쉼터가 반겨준다. 건너편에 아담하게 꾸며진 하늘숲 정원을 둘러보는 것이 오늘 일정의 시작이다. 축제 때에는 작은 숲속 음악회가 열리는 공연무대와 의자들은 관중들이 오기를 학수고대하고 있다. 옆으로는 함백산 사진들이 전시되어 계절마다 예쁘게 피는 야생화들과 겨울의 멋진 설경을 보여준다.
산상의 화원 입구에서부터 시원하게 쭉쭉 뻗은 나무들이 오는 손님들을 반겨 맞아준다. 멀리서 보고 당연히 편백나무의 행렬이라고 생각하고, 가까이 가서 보니 놀랍게도 강원도의 울창한 숲에서 건강히 자란 소나무다.
정원처럼 펼쳐진 야생화들 사이로 난 오솔길을 따라서 풀내음을 음미하며 천천히 걷는다. 예쁜 꽃을 모델로 접사 사진을 찍으려고 하니 어디선가 나타난 산바람이 심술을 부린다. 바람이 잦아들기를 기다려 야생화들을 사진기에 담고 다시 뚜벅이가 되어 산상의 화원과 작별 인사를 고하고 만항재 숲길로 향한다.
숲길로 들어서니 햇살을 받은 연초록의 나무들이 손을 흔들며 길을 안내해준다. 머리 위로 하얀 함박꽃들이 얼굴 가득 미소를 지으며 파란 하늘을 배경으로 자태를 뽐낸다. 여기저기에서 어여쁜 나비들이 꽃들을 오가며 살랑살랑 춤을 춘다.
숲길이 끝나고 언덕마루에 다다르니 확 트인 풍광이 나타나 몸과 마을을 시원하게 해준다. 능선 위의 거대한 풍력발전기들을 주인공으로 푸른 하늘과 하얀 구름이 어우러진 작품은 우리에게 또 다른 명작이 준다. 마을로 내려가는 산길은 어느새 하얀 토끼풀들로 가득하고 사이사이 이웃사촌인 붉은토끼풀들이 얼굴을 내민다. 반환점을 찍고 다시 숲길을 거쳐 출발점으로 돌아와서 2시간여의 만항재 투어를 마무리한다.
여행 TIP. 곰배령 예약은 점봉산산림생태관리센터 홈페이지에서 가능하고 진동리에서 숙박하면 예약을 대행해 준다. 자작나무 숲의 입산 가능 시간은 하절기에는 9시에서 3시까지이고 동절기에는 9시에서 2시까지다. 산림보호를 위해 입산 통제 기간이 있으므로 산림청 홈페이지를 통해 확인이 필요하다. 함백산 만항재 야생화 축제가 매년 7월 말에서 8월 초에 열리니 일정에 맞춰 가면 다양한 먹거리와 체험을 즐길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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