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신장학회 소식지에 다양한 원고를 기고하였으나, 의료 봉사 후의 후기는 기고한 적이 없기에 조금 부담이 되었지만 홍보위원으로서의 책임감을 가지고 글을 쓰게 되었다. 이전에도 몇 차례 단기 의료 봉사를 다녀온 적은 있었지만, 최근에는 코로나로 해외를 나간 적이 아예 없었다.
2022년 여름경, 출석하는 교회에서 2023년 1월에 의료봉사를 나가기로 결정하고 난 뒤에는 오랜만에 해외 의료 봉사를 나가는 설렘도 있었지만, 코로나라는 변수가 있어서 실제로 잘 나갈 수 있을지 하는 걱정도 있었다.
봉사할 곳은 NGO 단체 차 선생님의 소개를 받았다. 라오스 후아판주의 위앙싸이군에 위치한 소수 부족 학교의 학생들을 진료하는 것이었다. 라오스는 전체적으로 의료 혜택이 좋지는 않겠지만, 후아판주는 라오스 내에서도 경제적으로 어렵고 낙후된 지역이라 의료 접근성이 더욱 떨어졌다. 의료팀이 가려고 하는 이 학교는 부모님이 안 계시는 결손 가정의 학생들이 주로 다니는 학교라 차 선생님이 소개를 해주었다.
이전의 몇 차례 의료봉사를 준비해 본 경험을 바탕으로 약 및 진료 기구 등을 차근차근 준비하였다. 이번에는 치과 선생님과 신경외과 선생님이 같이 동행하고, 치과 선생님이 단순한 치과 교육을 넘어서 실질적인 도움을 주기 위해 이동식 치과 진료 기구를 개인적으로 구입하셨기에 정말로 제대로 된 의료 봉사를 할 수 있을 것 같아서 기대가 되었다.
2022년 11월부터 같이 의료봉사를 가는 팀원들끼리 매주 준비 모임을 하고 여러 사항을 의논을 하면서, 의료 봉사팀이 완성되었다.
드디어 1월 9일에 라오스에 첫발을 내디뎠다. 목적지인 후아판주의 위앙싸이군은 라오스에서도 변두리여서 한국에서 직항은 없고, 라오스 수도인 비엔티안에서 위앙싸이군으로 가는 비행기는 11인승 경비행기로 하루 두 차례밖에 없었다.
1월 10일 1시 비행기를 타기 위해 공항에서 기다리고 있었으나, 전광판에 지연(DELAY) 글자가 떴다. 처음에는 좀 늦어지나 보나 했는데 갑자기 기상악화로 비행기가 뜰 수 없다고 하였다. 내일도 기상 악화가 계속되면 갈 수 없다고 하기에, 차 선생님의 권유로 버스를 타고 가기로 했다. 그러나 버스를 타고 가는 경우에는 약 16시간 정도가 걸린다고 하여서, 순간 귀를 의심했다.
구글 검색을 해보니 약 600여 킬로미터인데 왜 16시간이 걸릴까 생각이 들었는데, 가면서 알 수 있었다. 굽이굽이 산길인데 안개가 있어서 도저히 빨리 갈 수가 없었고, 좁은 길에서 앞에서 오는 차량들과 충돌을 피하고자 경적을 울리면서 가야 했기에 속도를 20-30킬로미터 이상 올리기 힘들었다. 버스는 침대차였기에 그나마 다행이었지만 한 침대에 2명이 같이 누워야 했고, 길이가 160cm 정도여서 대부분 반듯이 눕기 힘들어 무릎을 구부리면서 누워 가야 했다.

오후 5시에 출발한 버스에서 잠을 자다 깨다 반복하면서 한참을 가고 있었는데, 버스가 갑자기 고장이 났다. 수요일 아침부터 진료가 예정되어 있었는데 버스 수리로 인해 더욱 늦어져서, 결국은 도착예정시간인 오전 9시를 훌쩍 넘겨 오후 1시에 도착했다. 버스에서 구부정하게 누운 상태로 20여 시간 있었던 기억은 정말 잊지 못할 추억으로 남을 것 같다.
오전부터 진료를 못 하고 오후만 가능할 것 같아 마음이 급했지만, 진료 전에 후아판주 공무원들을 만나야 했기에 점심을 20분 만에 먹고 바로 도청으로 가서 관계자들을 만났다. 하지만 우리를 기다리던 공무원들이 후아판주 부도지사, 교육부/외교부/보건부 최고 책임자임을 알았을 때 우리는 깜짝 놀랐다.
이분들은 어제부터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고, 알고 보니 지금까지 이 지역에 해외 의료팀이 방문한 적이 한 번도 없기에 우리에게 거는 기대가 매우 컸음을 알 수 있었다. 접견 및 담소를 뒤로 하고, 우리는 진료 예정 지역인 소수 부족 학교로 이동했다. 도열하여 태극기를 흔들며 우리를 기다리는 학생들을 보았을 땐 우리를 매우 기다렸음을 알 수 있어서, 매우 감사했고 또 한 편으로는 늦어서 미안하기도 하였다.

우리는 바로 진료 준비를 하였고, 한명 한명씩 진료를 보기 시작했다. 소변검사 스틱을 나눠주고 혈뇨 및 단백뇨 등이 나오는지도 확인하였고, 검사 결과에서 이상이 발견된 학생들에게는 병원에 가서 정밀 진료를 받아 볼 것을 설명하였다.
하지만 소변 검사에서 이상이 있는 학생들에게 부모님에게 결과를 말씀드리고 현지 병원에 가보라고 이야기하였을 때, '저는 말씀드릴 부모님이 없어요'라는 대답을 듣고 우리는 할 말을 잃었고 마음이 너무 아팠다.
또한, 한쪽 눈이 백내장처럼 하얗게 된 여학생에게 그 이유를 물었을 때, 어렸을 때 무언가에 찔렸는데, 그 뒤로 치료받지 못해 눈도 보이지 않고 눈동자가 하얗게 되었음을 알고는 눈물이 나올 뻔했다.
그렇게 3시간 넘게 쉬지 않고 진료를 보았던 것 같다. 치과팀은 기다리는 아이들이 있어서 더 늦게까지 진료를 보려고 하였으나, 현지 공무원들이 준비한 환영식에 가야 해서 남아 있는 아이들의 진료를 보지 못한 아쉬움을 뒤로 하고 다음을 기약하였다.
저녁 식사 후 30여 시간 동안 씻지 못한 몸을 씻을 생각에 기분 좋게 숙소에 도착했으나, 도착한 호텔에서 그날은 물이 안 나온다는 다소 황당한 일이 발생했다. 우리는 급하게 주변의 숙소를 다시 알아보아 30여 킬로미터 떨어진 곳으로 이동하였다.
이동 중에 우리는 이번 의료 봉사에 대한 소회를 나누었는데, 그 결과 우리는 이번 의료 봉사에 겪었던 여러 고생이 생각지도 못한 전화위복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우리가 포기하지 않고 20여 시간을 버스를 타고 어떻게든 후아판 지역으로 가서 진료를 하였기에, 차 선생님과 후아판 지역의 공무원과의 신뢰 관계는 더할 나위 없이 좋아졌다. 우리가 만약 여러 가지 이유로 안 갔더라면, 다음부터는 차 선생님이 하는 여러 가지 봉사 활동에 큰 차질이 있었을 것임이 불 보듯 뻔할 일이었다.
나중에 우리가 아닌 다른 의료팀이 오기 위하여 의료 신청을 했을 때, 이제 후아판 공무원들은 차 선생님을 믿고 진료 승인서를 발급해 줄 것이다. 우리 의료 봉사팀이 이번에 했던 일 중에 가장 중요한 부분은 환자를 진료한 부분도 있지만, 이 척박한 라오스 후아판 지역에 다른 의료팀이 올 수 있는 마중물 역할을 한 부분도 있으리라 생각된다.

의료팀을 포함한 전주 제자 교회 성도들을 안내해 주시고, 먼 이국땅에서 어려운 사람들을 헌신적으로 섬기시는 차 선생님께 다시 한번 감사드리며 응원을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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