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이천열린의원 화재 [24년 여름호]

편집부

news@ksnnews.or.kr | 2024-06-03 10:15:20

우리가 기억하여야 할 것들은

강경의 / 의료법인 열린의료재단 이천열린의원 원장


2022년 8월 5일 금요일 오전, 외래 진료실에 있던 중 갑작스러운 화재경보기 소리에 신장실로 달려 들어갔을 때는 신장실 바닥에서 연기가 조금씩 보이고 있었다. 간호사들은 needle line 클램프와 blood line 클램프 사이의 연결 부위를 돌려서 분리하거나, blood line 쪽 클램프 뒤를 가위로 절단하고 있었다.

간호사들이 기계에서 분리된 환자들에게 신장실 밖으로 대피하라고 외쳤지만, 많은 환자들은 침대에서 일어나는 것조차 도움을 기다리고 있었다. 나와 간호사들은 기계에서 분리된 환자들을 양손에 한 사람씩 잡고 신장실 입구를 향하여 대피하였다. 안쪽 침대에 있던 환자들이 신장실 중간 정도를 지날 즈음에는, 외래 진료 구역과 신장실 사이에 위치한 복도에서 신장실 안으로 연기가 들어오고 있었다.

빨리 일어나 먼저 입구에 도착한 일부 환자들은 조금씩 뒷걸음 치는 상황이었다. 직원과 환자 모두 KF94 마스크를 쓰고 있었고 신장실 입구에 장애물이 없어 신장실 입구를 향하여 나아갈 수 있었다. 신장실 방화문 밖 복도에 진입하니 이미 연기가 가득 차 있어 아래층 건물 밖이나 위층 옥상으로 대피하는 것이 불가능하여 복도 건너편 또 다른 방화문 안쪽, 외래 진료 구역으로 대피하였다.

외래 진료 구역으로 일차 대피 후 대기하던 중 사다리차가 도착하여 진료 구역, 4층에서 건물 밖, 1층으로 환자 대피를 마무리할 수 있었다. 대부분의 환자들이 사다리차로 건물 밖으로 대피하였을 때 화재가 진압되었다. 화재 진압 후 의료진들은 복도를 통하여 건물 밖으로 대피하였다. 환자와 의료진은 근처 여러 병원으로 분산하여 화재와 관련한 건강 이상을 확인하였다. 대부분의 환자와 의료진은 심각한 문제는 없었던 상태로 응급실 진료 후 퇴원할 수 있었다.

화재 당일 건강 이상 여부를 확인 후, 나와 간호사들은 병원 근처에서 대기하였다. 당일 20시경 경찰관 입회하에 신장실로 들어가서 투석 환자 의무기록을 가지고 나왔다. 당일 오후 투석이 예정되었던 환자들은 대부분 인근 병원에서 임시로 투석을 진행하였으나 다음 날 투석해야 하는 환자들 대부분은 우리 연락을 기다리는 상황이었다.

먼저 이천과 여주에 위치한 신장실에 연락하여 전원 가능 인원을 파악하였다. 인접 지역에서 전원 가능한 50명은 환자들에게 앞으로 투석하게 될 병원을 안내하고, 해당 병원 수간호사에게 전원의뢰서를 보냈다. 이천, 여주 지역에서 전원이 불가능한 40여 명의 환자는 불가피하게 분당열린의원과 성남열린의원에서 투석을 하기로 하였다. 화재 직후 간호사들이 육체적, 정신적으로 아주 힘든 상황이었다.

일주일간은 수간호사가 책임간호사와 함께 이천에서 분당과 성남으로 환자들과 같이 이동하여 투석을 진행하였다. 간호인력 부족은 열린의료재단 산하 병원 20여 명의 간호사들의 자발적인 참여로 해결할 수 있었다. 일주일 후 이천열린의원 간호사들이 모두 진료에 복귀하였다. 한 달간 40여 명의 환자들 투석을 성남과 분당에서 화, 목, 토 오후에 진행하였다.

성남과 분당 열린의원 원장님들도 환자 회진에 같이 참여하여 도와주셨다. 사고 3주 후 건물 출입이 가능하였고 건물 구조 안전 진단을 마치고 외래 진료 구역에 임시 인공신장실 공사를 시작하였다. 일주일 후 공사를 마치고 투석기 19대를 설치하여 임시인공신장실을 열었고 화재 전 이천열린의원에서 투석하던 환자 대부분의 투석을 다시 시작할 수 있었다. 2022년 12월에는 이천시에서 다른 건물로 이전하여 새롭게 진료를 이어나갈 수 있었다.

화재 조사는 아래와 같이 진행되었다. 경찰은 화재 당일 특수 본부를 만들었다. 화재 현장 감식, 대피 과정이 담긴 CCTV 영상 분석, 신장실내에 있었던 환자들 방문 조사, 재난 대비 매뉴얼 확인, 그리고 의료진의 화재 상황 대처에 대한 대면 조사가 이루어졌다. 대피 전 과정이 기록된 CCTV 영상에서는 화재 당시에 재난 대비 매뉴얼에 따라 연기가 차 있는 투석실에서 3, 4분 내의 짧은 시간에 의료진이 거동하기가 불편한 30명의 환자와 함께 신속하게 대피하는 장면을 할 수 있었다.

사망자는 환자 4명과 간호사 1명이었다. 1명의 환자는 가장 먼저 계단으로 대피 중 연기로 가득한 복도에서 사망하였다. 3명의 환자는 거동이 불편하여 평소에 휠체어로 이용하였던 환자들이었다. 간호사 1명은 휠체어로 이동하던 환자 중 1명의 의족을 채우다가 대피하지 못하고 사망한 것으로 생각된다. 사고 6주 후 수사 결과가 발표되었다. 사고 원인은 철거 작업을 하면서 전기 차단 없이 작업하던 중 건물 건축 당시 벽면 내부에 세워진 철골 H빔 기둥이 벽돌과 모르타르 없이 텅 빈 상태로 시공되어 있어 3층에서 발생한 화재 연기가 벽과 바닥을 타고 신장실로 급격히 확산하였던 것이었다.

이번 화재 사고에서 우리가 기억하여야 할 것들은 아래와 같다. 첫째는 직원 모두가 재난 상황에 대비한 매뉴얼을 평소에 정확하게 숙지하고 있었고, 중요한 사항은 간호사 휴게실과 스테이션에 별도로 부착하여 항상 볼 수 있게 한 점이다. 둘째는 환자와 직원 모두 KF94 마스크를 착용하였기 때문에 대피 시간 동안 신장실내에 화재 연기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대피할 수 있었다는 점이다. 셋째로 화재 시 의료진이 모두 합심하여 거동이 힘든 환자들과 함께 신속하게 대피하였다는 점이다.

환자 의족을 채우느라 함께 대피하지 못하고 사망한 현은경 간호사, 화재 상황에서는 환자 대피의 소임을 다하고 화재 후에는 남은 환자들을 위해 최선을 다해 진료에 임한 이천열린의원 간호사들, 화재 후 힘든 시기에 환자 투석 근무를 지원하였던 재단 간호사들과 성남열린의원과 분당열린의원의 원장님들, 화재 후 임시 신장실을 만들고 새 건물로 이전하기까지 진료 현장에서 지원을 아끼지 않았던 재단 관계자분들에게 감사드린다. 대피 과정에서 혹은 미처 대피하지 못하고 사망한 4명의 환자분들에게는 죄송한 마음을 전한다.

마지막으로, 화재 사고 이후에도 흔들리지 않고 의료진을 믿고 격려해 주신 환자분들께 감사드리며 모든 환자와 의료진이 무사하게 대피하지 못한 아쉬움이 남지만, 이번 사고로 사망한 환자분들과 현은경 간호사의 희생이 헛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여 앞으로 진료에 임하겠다고 다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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