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남 / 김성남내과의원 원장, 대한신장학회 보험법제이사, 보험의료정책위원회 위원장
안녕하세요. 대한신장학회 보험법제이사겸 보건의료정책위원장 김성남입니다. 오늘 지면을 빌어 KSN2021 공로상 수상소감 말씀을 드리게 되어 영광스럽게 생각합니다. 제가 신장학회에 처음으로 발을 들인 것이 2004년도였는데, 그날 이후 오늘까지 오로지 한길만을 걸어오며 해왔던 종합적인 과정을 회원분들께 말씀 올리는 기회가 드디어 마련되었기 때문입니다.
KSN2021 공로상을 수상하며 수상소감 발표자료의 제목을 ‘긴 여행’으로 붙였습니다. 이는 제가 속해 있는 보험법제위원회의 업무는 독특한 분야라 위원회 업무를 수행하면서 겪은 일들이 긴 여행과 닮았기 때문입니다.
보험법제위원회는 대한신장학회의 일원으로 학회가 추구하고자 하는 목표, 그중 회원 권익 향상과 환자의 건강권을 제고하는 등은 동일하지만, 구체적인 활동 내용을 살펴보면 교수님들이 하시는 연구와 논문의 질 향상, 교육의 발전 등과는 다른 분야를 다룹니다.
주로 사회적, 경제적, 정치적 상황이 항상 고려되어야 하는 업무로 지난 17년 동안 위원회 업무를 맡고 있습니다. 그동안의 과정을 돌이켜보면 마치 평행한 기찻길을 달리는 것과 같이 외롭고 끝이 없는 길을 지금까지 걸어왔다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그래서인지 지금까지의 과정이 더욱 길고 외로운 여행길과 닮아있는 것 같습니다.
학회, 위원회 활동을 하면서 만나는 분들과 소통하다보면 흔히들 잘못 이해하고 계신 것이 있어 소개해드리고자 합니다. 새로운 보험 수가나 보건의료 정책의 적용이 이루어지는 과정에 학문적 근거와 현실 논리적 타당성, 또 적절한 소통 창구가 있으면 어렵지 않게 진행이 이뤄질 수 있다고들 생각하시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것은 그 이상의 노력과 때로는 행운이 필요하다는 점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혈액투석 환자의 수가 체계는 건강보험과 의료급여로 나눌 수 있습니다. 2001년 의료급여 혈액투석 수가제도(보건복지부 고시 제2001-56호: 2001년10월31일)가 마련되었으나 기본적으로 문제점을 안고 있는 상태로 제정되었습니다.
첫째, 의료급여 수가 자체가 당시 건강보험 수가 보다 현저히 낮게 책정되었습니다.
둘째, 의료급여 외래 혈액투석 환자의 수가는 정액 수가로 혈액투석 이외의 복합적인 진료를 받을 경우 수가가 책정되어 있지 않아 혈액투석 치료를 받은 날에는 심장내과, 내분비내과와 같은 내과분과의 진료를 별도의 수가로 받을 수 없었습니다. 그러므로, 환자가 복합적인 진료를 받기 위해서는 불편을 감수하고 혈액투석 치료를 받지 않는 날을 정하여 시간을 내어 다시 병원에 내원하여 진료를 받아야 했었습니다.
셋째, 건강보험 환자 수가는 환산지수와 연동되어 매년 물가와 인건비 인상에 따라 수가도 인상될 수 있었으나 의료급여 환자 수가는 매년 같은 정액제 비용을 적용받아 의료급여 환자는 건강보험 환자와 비교하여 소극적인 진료와 같은 불평등한 차등 진료를 받을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어 있었습니다.
혈액투석 의료급여 수가는 이러한 기본적인 문제점을 가지고 있어 그동안 실제 진료 현장에서 보이지 않게 차등 진료를 조장하는 조건으로 작용하여 결국 환자에게 피해가 갈 것이라는 목소리가 점점 커졌고, 의료급여 혈액투석 수가의 개선이 반드시 필요한 상황이었습니다.
‘인내, 소통, 공감 그리고 기회’. 보험법제이사가 가져야하는 가장 중요한 덕목을 꼽으라면 이 네 가지를 꼽고 싶습니다. 처음에는 새로운 행위 하나를 보험행위에 등재시키기 위해 정책 하나를 수정하기 위해 또 수가 하나를 조금이라도 더 받기 위해 여러 관계부처를 뛰어다니고, 그 중 가장 핵심이라고 알려진 곳에 일 년 이상을 집중해서 결과가 나올 쯤 되면 담당자가 바뀌고 새로운 사람이 나타납니다.
한편으로는 야속하고 속상한 마음도 들었지만, 이러기를 몇 번 반복하다 보면서 상당한 내공의 인내심이 생기게 되었습니다. 이런 과정을 통해 제 개인의 인성 개발을 해 주신 것에 대하여 항상 감사의 마음을 갖고 있습니다.
‘학문적 근거와 현실 논리적 타당성 그리고 적절한 소통 창구가 충족되었음에도 왜 일이 수월하게 진행이 되지 못했을까요?’ 라는 질문을 하신다면, 저는 ‘세상에 우리만 있지 않아서입니다’라고 답해드리겠습니다. 전체 의료비라는 커다란 하나의 파이를 두고 치열한 제로섬 게임을 하고 있는 것이죠. 다른 과들과의 견제, 의료비 출납을 중간에서 담당하는 정부 그리고 무엇보다 현재 우리나라 의료보험 체계에서 비용을 지출하고 있는 국민, 이 모두의 인정이 있어야하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사회와의 소통과 공감이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이유입니다. 물론 이것만으로도 부족할 때, 경우에 따라서는 정치적 기회가 필요합니다. political window라고 하죠. 예를 들어 자연분만수가의 인상, 태완이법, 민식이법 등이 이런 경우에 해당합니다.
의료급여 혈액투석 수가의 문제점을 개선하기 위해 2005년 3월에 신장학회는 남서울대학교 정두채 교수님 팀을 통해 혈액투석 원가분석을 처음으로 시행하였습니다. 당시에 지적되었던 의료급여 정액수가의 문제점으로는 건강보험보다 현저히 낮은 수가, 동반상병의 진료에 제한이 있고, 물가 혹은 환산지수 등과의 연동이 없이 비상식적으로 고정된 수가구조 등이 있었습니다.
2007년에는 복지부가 나서서 연구용역을 진행하였는데요, 이때 두 연구를 통해 나타난 결과는 건강보험에 비해 정액수가가 건당 약 3만원의 비용 차이가 있음을 확인해 주었습니다. 하지만 이 결과는 당장 현실에 반영되지는 않았습니다. 앞서 말씀 드린바와 같이 담당자 교체, 기재부의 반대, 사회적 공감의 부재 등에 부딪혀 더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했습니다.
실망하지 않고 또다른 노력을 기울여, 정액수가가 아닌 건강보험 혈액투석 수가를 올리는 노력을 진행했습니다. 2008년에 역사적인 일이 생기게 됩니다. 한 번에 1.5배의 의사업무량 수가 인상을 이끌어내게 됩니다. 금액으로 따지면 연간 약 150억 수준이었으며, 이는 이후 매년 환산지수와 연동하여 현재까지 연복리의 형태로 금액인상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현재 우리나라의 전체 의료행위가 약 4000여개 정도 되는데, 2004년 이후 현재까지 이 정도로 한가지 행위의 수가가 한 번에 인상된 일은 아주 드문 일이라 할 수 있습니다. 어느 정도였냐 하면 2008년 당시에 우리나라가 총 진료비에 쏟아 부은 추가 재정이 약 3000억원 정도였는데 그것의 5%에 해당하는 금액이었습니다. 행위 하나에 이 정도 비중의 예산이 책정되었으니 정말 놀라운 일이라 할 수 있습니다.
여기서 그치지 않고 대한신장학회는 국회를 통한 제도개선을 모색하고자 의원실을 통해 의료급여 정액수가의 개선을 위한 간담회를 진행합니다. 이때 처음으로 ‘환자의 건강권 확보’ 라는 용어를 사용하며 사회적 소통과 공감에 노력하게 됩니다. 그렇게 노력한 결과 2014년에 드디어 의료급여 정액수가 1만원 인상을 이뤄냅니다. 이 금액은 연간 약 150억원에 해당하는 금액이었습니다.
이로부터 또다시 4년간의 끊임없는 노력 끝에 2018년에 투석 당일에 기타 상병의 진료비용을 별도로 인정받을 수 있는 고시개정을 이룰 수 있었습니다. 이로 인한 간접적인 수가인상 효과는 굳이 계산해보지 않아도 엄청난 효과임을 알 수 있습니다. 이 시기에 정치, 사회적 커뮤니케이션을 하면서 ‘소외된 계층의 평등한 건강권 확보’라는 용어와 메시지를 사용한 것도 인상적인 일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로부터 또 다시 3년, 비로소 17년간의 노력이 일단락되는 긴 여행의 중간 기착점에 도착하게 됩니다. 정액수가라는 개념을 상쇄시키고 정액-점수제, 즉 환산지수 연동에 따라 매년 수가의 자동인상이 이뤄지는 구조를 만들어내게 되었습니다. 이를 금액으로 환산하면 연간 약 75억원 수준으로 이후 매년 같은 수준의 수가 인상이 예상되는 결과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 완전한 개선은 아니어서, 건강보험 수가와는 아직 격차가 있고, 검사비, 필수경구약제, 조혈제 등의 비용이 묶음으로 정액수가로 남아있어서 앞으로 해결해야하는 과제로 남아있습니다.
이로서 2004년 대한신장학회에 처음 발을 들이고 현재까지 파란만장했던 시간이 일단락되게 되었습니다. 이 자리에 있기까지 도와주셨던 모든 분들께 다시 한번 감사드리며, 앞으로 제 역할을 계속 이어줄 후배 선생님들께 COVID 19 이후의 과제로 꼽히는 안전, 전문 그리고 적정성 이 세 가지를 향후 방점으로 삼고, 새로운 인내, 소통, 공감을 통해 학회의 발전을 지속해 주실 것을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저작권자ⓒ 대한신장학회 소식지.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