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소영 / 대한신장학회 윤리위원, 장안내과의원 인공신장실
2020년 1월, 중국 우한에서 유행하기 시작했다는 원인불명 호흡기질환의 소식을 처음 들었을 때, 전 세계가 이토록 힘든 시간을 겪게 될 줄은 몰랐습니다. 근래에 경험했던 사스와 메르스처럼, 이 또한 넘어가지 않을까 긍정적인 상상을 했을지도 모르지요. 그러나 예상과 달리 코로나는 중국, 미국, 유럽 등을 시작으로 전세계를 휩쓸면서 수많은 도시를 마비시켰고, 우리들 역시 혼란과 공포에 빠뜨렸습니다. 유행 초기에는 의료진이 사용할 마스크조차 구하기 어려웠고, 백신이 도입된 이후에는 잠시 안도의 한숨을 쉬었지만, 코로나 확진자가 폭증할 때에는 의료 인력의 부족과 치료 시설 및 장치, 약물 수급 부족으로 애를 태워야만 했습니다. 유행이 시작된 이후 2년이 훌쩍 넘은 2022년 여름 현재도, 우리는 재택 치료, 비대면 진료, 그리고 격리라는 단어 등에 익숙해지고 둔감해졌을 뿐, 여전히 코로나라는 큰 파도를 넘어가는 중이라는 건 확실한 것 같습니다.
면역력이 약한 환자분들이 수시간 체류하게 되는 인공신장실은 다른 어떤 곳보다 민감하고 발 빠르게 대응했습니다. 수시로 업데이트되는 대한신장학회의 코로나19 대응지침과 질병관리본부 대응지침 등에 눈과 귀를 쫑긋 세웠습니다. 투석실 내에서 확진자가 발생했을 때에는 역학조사관과 함께 원내 폐쇄회로를 돌려보며 전염 가능성 여부를 타진하였고, 격리되거나 또는 확진된 투석환자가 생겼을 때는 보건소와 연락을 주고받으며 투석 거점병원으로 이송하거나 또는 기존 의료기관에서 방호복을 입은 상태로 격리 투석을 시행하기도 하였습니다. 이제 인공신장실 내에서의 마스크 의무 착용과 손소독제 사용, 인공신장실 내부로 들어오는 모든 사람들의 체온 확인, 호흡기 증상 유무 확인, 신인공장실 환자의 면회제한, 그리고 원내 감염 확산 방지를 위한 취식제한 등은 너무나도 당연한 것이 되어버렸습니다.
사실 삶에도 관성의 법칙이 적용된다고 합니다. 인공신장실의 식사 및 간식 제공, 차량 편의제공은 환자유인행위로 분류되어 위법이라는 지적을 끊임없이 받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한 번 시작된 이후로는 언제 중단될지도 모르는 채 지속되고 있었지요. 그러나 코로나라는 외부의 힘은 여기에도 너무나 강력하게 작용했습니다. 그동안 관성적으로 행해진 식사 및 간식 제공은 인공신장실의 감염관리를 위해선 용인될 수 없음이 확실했고, 이제는 인공신장실을 드나드는 환자와 의료진 모두에게서 자연스레 합의가 이루어졌으니까요.
필자가 윤리위원회 칼럼의 첫 번째 글을 어떤 주제로 시작할지 고민할 때, 가장 먼저 떠오른 화두는 ‘인공신장실의 윤리는 과연 무엇인가?’였습니다. 윤리와 비윤리를 명확하게 나누기는 어렵지만, 의료진이 식사를 챙기는데 쏟을 에너지를 환자의 치료 전반으로 돌리는 것이 더 윤리적이라는 건 대부분의 사람들도 동의할 수 있는 명약관화한 사실일 것입니다. 물론 식사 및 간식 제공 근절 외에도 논의되어야 할 윤리성의 문제는 우리 앞에 산적해 있습니다. 그것들이 앞으로 이 칼럼의 주된 담론이 될 같습니다. 그렇다면 다음으로 해결해야 할 윤리성의 문제는 더 이상 외부의 힘에 의해 바뀌어 익숙해지는 게 아니라, 우리 스스로의 힘으로 해결해 볼 수 있기를 필자는 소망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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