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2022년 2월 24일에 시작된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이 아직 끝나지 않고 있다. COVID-19 감염증으로 인한 팬데믹 위기가 여전히 기승인 때였다. 이 전쟁이 끝나기도 전, 오랜 적대관계인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무력 충돌로 2023년 10월에 또 다른 비극이 시작되고 있다.
재난은 국민의 생명과 신체 및 재산과 국가에 피해를 주거나 줄 수 있는 것으로 정의된다. 재난은 자연현상으로 인하여 발생하는 자연재해와 인간이 일으킨 인재 또는 전염병과 같은 사회 재난을 포함한다. 전쟁은 국가 간에 무력을 사용하여 충돌하는 현상 또는 행위로,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전염병, 자연재해와 함께 인류를 끊임없이 괴롭히는 재난이다.
전쟁은 사회기능을 마비시키며, 의료시설도 제 기능을 할 수 없고, 물자의 이동도 제한되기 때문에 노인, 소아, 만성질환자는 재난에 더욱 취약해진다. 전쟁으로 인한 의료 인력의 부족, 의료시설 파괴, 물자 조달의 어려움, 비위생적 환경 등으로 신장 합병증과 사망률이 급증할 수 있다. 의료 서비스뿐 아니라 교통, 전기, 수도, 통신과 같은 인프라의 파괴가 동반될 수 있어 생명 유지를 위한 투석 치료의 연장이 어려워 특히 혈액투석 환자들에게 재앙이 초래될 수 있다.
이렇게 전쟁이 발발하게 되면 신장질환자가 급격하게 증가하게 될 것이며, 국제 사회의 큰 노력에도 불구하고 지금, 이 순간에도 전 세계 여러 국가에서는 빈번한 내전과 국가 간 무력 충돌이 일어나고 있다.

전쟁 중에 발생할 수 있는 신장 질환은 과거부터 급성 신손상(AKI)이 대표적으로 알려져 있다. 다발성 외상, 대량출혈, 세균감염, 압궤증후군의 합병증으로 발생하며, 군인과 민간인 모두에게 발생할 수 있다. 총상과 같은 직접적 손상 이외에도, 화학무기로 인한 독성물질의 노출, 화상, 탈수, 패혈증을 포함한 많은 원인이 전쟁 중 AKI를 유발한다.
건강하던 사람들도 급성 신손상이 발생할 수 있으며, 특히 기저의 만성콩팥병 환자들에게 발생하였을 경우 사망의 위험이 더 커진다. 세계대전 당시, 전쟁 중 AKI로 인한 사망률이 80~90%이었는데 한국전쟁 시기에도 사망률이 비슷하였다.
한국전쟁은 투석 치료가 도입되는 과도기였으며, 미군에 의해 설립된 Renal Insufficiency Center는 Kolff-Brigham dialyzer를 사용해서 한국전쟁 사상자를 치료하면서, AKI로 인한 사망률이 53%까지 감소하였다. 투석은 전기, 정수된 물, 투석 기계, 항응고제와 같은 약물과 전문인력이 복합적으로 필요하므로, 급성기 치료를 위해 설립된 야전 병원에서는 일차적으로 적용하기 어렵다. 야전 병원에서 수액과 같은 응급처치를 시행하고 투석이 필요한 경우 상급의료시설로 빠른 전원이 필요하겠으나 폭격 위험성이나 도로의 차단 등으로 이동이 쉽지 않다.
예외적으로 이라크 전쟁 시 야전 병원에서 소아 흉관을 이용하여 복막투석을 시행한 예가 있었다. 급성 신손상은 장기적으로 만성 콩팥병의 유병률을 증가시킬 수 있다. 전투로 인한 부상으로 AKI가 발생한 환자의 추적 결과 고혈압 진행이 66% 증가하고, 만성콩팥병으로 변화할 위험성이 5배 증가한다는 분석이 있어, 장기적으로 많은 의료 부담이 될 수 있다.

만성 콩팥병 환자는 신기능의 악화를 지연시키기 위하여 다수의 약제를 복용하며, 식이 제한이 필수적이다. 전쟁 중 극도의 신체·정신적 스트레스에 노출되며, 영양상태를 악화하고, 불규칙한 약제 복용과 의료시설 이용 중단으로 신기능이 빠르게 나빠질 수 있다. 전쟁 기간이 길어질수록 혈압조절과 혈당 조절이 어려워지며, 진료에 특별한 주의가 필요한 면역억제제 복용 환자의 추적과 신기능 악화의 조기 진단이 어려워진다.
비위생적 환경 노출로 인한 감염병 위험의 증가, 피난 중 충분한 수분 및 영양 섭취의 부족으로 인해 이식 수혜자들의 이식 신장 기능부전이 동반될 수 있고, 적절한 개입과 치료가 어려워질 수 있다. 특히, 말기신부전 환자의 경우 생명 유지를 위해 일주일에 3회의 정기적인 혈액투석이 필수적이나, 전쟁 상황에서 안정적인 투석을 받기는 특히 어려워진다. 통상적인 의료 서비스와는 달리, 전기, 수도, 의료 시설, 교통과 같은 복합적인 자원이 필요한 말기신부전 환자는 전쟁으로 인한 시설의 파괴로 투석실 이동이 불가능한 상황에 부닥치면서 제때 투석을 받지 못하게 되어 생명의 위협을 받게 된다.
혈액 투석을 받던 중에 폭격을 당하면 빠른 대피가 어렵고, 위험한 상황에서도 수시로 의료기관을 이용해야 해서, 불가피하게 투석 시간 및 투석 횟수를 줄여야 하며, 지역 내 투석기관의 이용이 불가하다면 다른 지역이나 이웃 나라로 이송해야 한다. 피난할 때 피난지의 투석 기관에 대한 정보가 부족할 수 있고, 의료진은 환자의 병력을 모름으로 인해 치료에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 혈액검사는 물론이고 체수분 상태의 평가가 어려우며 투석 혈관 문제의 발생 시 해결이 어렵다. 복막투석은 전쟁상황에서 혈액투석보다 실용적일 수 있으나, 복막투석액의 확보가 어렵고, 비위생적 환경으로 인한 감염 합병증 위험이 커진다.
우크라이나의 만성콩팥병 환자는 인구의 10~15% 정도를 차지하고 있었으며, 2021년 1월을 기준으로 혈액투석을 받는 환자는 8,717명(HD 6,017명, HDF 2,700명), 복막투석 환자가 931명, 이식 환자가 1,533명이었다. 전쟁이 시작된 후 우크라이나를 떠난 투석 환자의 수는 정확하게 집계되지 않았으나, 전쟁 후 6월까지 약 710만 명의 우크라이나 국민이 집을 잃고 피난했다. 러시아군의 진격지였던 우크라이나 동쪽 도시인 Kharkiv와 Chernihiv에서는 투석 환자의 이동 중 폭격의 위험을 피하고자 투석 횟수와 시간을 줄였고, 투석실을 지하로 옮겼으며, 마지막 세션의 투석 환자들을 밤 동안 투석실에 체류하게 하였다.
환자와 가족들은 전쟁이 시작된 한 달 후, 투석실 의료진의 동행하에 비교적 안전한 서쪽 도시 Lviv, Cherkasy나 이웃 나라로 피난하여 투석 치료를 지속하였다. 동쪽의 군사작전이 점차 잦아들면서 이들은 다시 원래 도시로 돌아가거나 여전히 피난지에 머물면서 투석 치료를 유지하고 있다. 이처럼 격전지로부터 안전한 지역으로 투석 환자를 이동하여 성공적으로 투석 치료를 시행한 기관의 사례가 보고되고 있다.
1989년 아르메니아 지진 후 구성된 RDRTF(Renal Disaster Relief Task Force)는 전쟁 직후 우크라이나의 환자와 의료진을 지원하기 위해, 우크라이나 신장학회, 국방부, WHO, NGO와 같은 여러 기구들과 소통하며 협력 모델을 구축하였다. 우크라이나의 상황에 대한 정보(환자 수, 치료 능력, 필요한 구호물자)를 수집하고, 매주 우크라이나 신장학회와 회의를 하여 정기적으로 상황을 공유하였다. 우크라이나 국민이 주변 유럽 국가로 대피하게 되면서, EU는 우크라이나인 피난민이 무상으로 치료받을 수 있도록 지원하였다.

RDRTF가 우크라이나 전쟁을 지원하면서, 앞으로의 재난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대비(preparedness)와 완화(mitigation)임을 강조한다. 재난은 예측할 수 없으며, 특히 전쟁은 자연재해와는 달리 피해 기간이 길어져 재난이 만성화될 수 있다.
재난 완화를 위한 첫 번째 방법으로 환자 교육이 있다. 투석 환자는 응급 상황에서 스스로 투석기에서 분리하는 방법을 익혀야 하며, 혈압·당뇨약/인결합제/칼륨제의 보유분을 약 2주간 비축할 것과 엄격한 식이와 수분 제한 방법에 대해서 다양한 매체를 통해 미리 교육하고, 본인의 질환에 대한 간략한 의무기록을 준비할 수 있도록 교육하여야 한다.
두 번째로, 의료기관은 재난 상황에 대응하는 프로토콜을 마련하는 것이 중요하다. 재난 상황에서의 체크리스트를 준비하고, 응급환자와 부상자 분류시스템 정비, 비상 연락망 구축, 비상 전원과 수도 공급의 관리, 재난 발생 시 의료진의 역할을 분담하고 대비 훈련을 미리 해야 한다. 또한, 간결하고 실용적인 재난 대응 지침을 준비하며, 재난 신장학 분야의 정보와 가이드라인을 만들어 의료진에게 교육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재난 발생 지역 내의 의료기관 이용이 불가할 경우 다른 지역이나 국가로 이송하는 것이 필요하므로, 의료진에 국한되지 않고 국가적인 지원과 다양한 기관의 협력이 요구된다. 재난이 길어지면 환자들의 외상 후 스트레스 증후군 등의 정신적 관리와 의료진 노동강도의 증가로 인한 번아웃증후군을 살펴야 한다.
재난은 많은 사회적 혼란을 야기하고, 재난 후에도 사회 기반의 복구에 많은 시간이 소요되며 건강 회복과 일상으로의 복귀를 위해서 큰 노력이 필요하다. 앞으로 전쟁을 포함한 여러 가지 재난을 대비하여, 신장질환자를 치료하고 생존율을 높이기 위해 의료진, 의료기관, 환자 모두가 재난에 대비하는 훈련 및 교육을 받는 것이 중요하다. 또한 재난 대비 가이드라인의 구축과 실행을 위해 국가와 유관 단체, 학회가 협동하고 준비하는 것이 필요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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