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형규 / 광명수내과 원장
윤성기 / 고려대학교 안산병원 신장내과 전임의
김형규 교수의 대한신장학회와 역사를 함께한 산증인이다. 국내 신장학 연구의 발전과 학생의 눈높이에 맞는 강의로 많은 후학을 양성했다. 또 환자들이 보다 안전하고 건강하게 혈액 투석을 받을 수 있도록 제도를 마련한 바 있다. 김형규 교수의 신장학에 대한 남다른 열정을 윤성기 전임의와 함께 들어본다.
Q1. 윤성기 전임의
안녕하세요, 교수님. 저는 현재 고려대학교 의료원에서 신장내과 전임의로 근무하고 있는 윤성기입니다. 즐거운 만남 자리를 통해 국내 신장내과 분야를 개척하신 교수님을 직접 만나 뵙고 이야기를 나누게 되어 영광이라 생각합니다.
지난 2015년 2월 고려대학교 의료원에서 퇴임하신 이후에도 일선에서 환자 치료에 전념하고 계신다고 들었습니다. 퇴임 이후의 시간은 어떻게 보내고 계신지 궁금합니다.
A1. 김형규 교수
저는 경기도 광명에 있는 광명수내과에서 일주일에 세 번 근무하며 환자를 만나고 있습니다. 병원에 있는 작은 연구 공간에서 시간을 보내기도 합니다.

Q2. 윤성기 전임의
교수님께서 신장내과, 신장학을 선택하실 때는 지금과 많은 점이 달랐을 것 같습니다. 교수님께서 생각하시는 신장학의 장점과 단점은 무엇인가요?
A2. 김형규 교수
사람이 병이 안 걸릴 수는 없어요. 그 병이 걸리게 되면 이제 장기 손상이 불가피하죠. 장기가 손상됐을 때 궁극적인 치료법은 장기 이식과 인공장기 밖에 없는 상황인데, 신장은 혈액 투석과 이식이 동시에 가능한 유일한 장기입니다. 인공 장기와 장기 이식 둘다 장단점이 있기 때문에 오래 사용하다가 문제가 생기면 다른 쪽으로 넘어가는 경우가 생겨요. 그렇게해서 환자를 살리고, 생명을 연장할 수 있는 것이죠. 그 두 가지를 병행하며 신장을 돌보는 과정에서 환자에게 새로운 삶을 선사할 수 있다는 자부심도 느끼지요.
Q3. 윤성기 전임의
신장내과를 선택하신 이후 꾸준히 연구하시며, 고려대학교 신장병 연구소 소장을 역임하시면서 국내외 논문 211편을 저술하시고 다양한 연구 업적을 남기셨는데요, 교수 재직 시절 가장 관심있으셨던 연구 분야가 궁금합니다.
A3. 김형규 교수
제가 고려대학교 의과대학 근무를 시작했을 때 저희 학교에 미생물학자 이호왕 교수님이 계셨어요. 이호왕 교수님은 현재 HFRS(신증후성 출혈열)라고 불리는 유행성 출혈열을 발견하신 분이에요. 그 병을 발견한 분이 저희 학교에 계시니 전국에서 유행성 출혈열 환자들이 저희 병원으로 몰렸습니다. 병원을 찾은 많은 HFRS 환자 중 급성HFRS의 경우 주로 급성 신부전 때문에 HFRS가 온 경우라 환자 대부분을 신장내과에서 진료했습니다.
그것이 계기가 되어서 급성 신부전에 대한 연구를 하게 되었어요. 저희가 급성 신부전 동물 모델로 실험해서 논문을 발표했는데, 제 기억으로는 그 논문이 국내 최초로 급성 신부전 동물 모델 실험 논문이에요. 그때가 1970년대라 동물 실험을 할 수 있는 여건이 부족했어요. 그런데 저희는 미생물학 교실, 기초학 교실 선생님들과 협업을 할 수 있어서 그런 실험을 할 수 있었죠. 그때 진행한 초기 연구가 지금까지도 다른 형태의 급성 신부전 연구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Q4. 윤성기 전임의
교수님께서는 연구 뿐만 아니라 우수한 강의자로도 알려져 있으신데요, 고려대학교 ‘석탑강의상’을 4차례 수상하시며 ‘학생 눈높이 강의’로 후학들 사이에서 귀감이 되시기도 하셨죠. 교육자로서 가장 기억나는 일이 있으신가요?
A4. 김형규 교수
병원에서 환자들을 진료하다보니 생각지 못한 한계를 느낀적이 있습니다. 환자나 보호자에게 어떤 병에 대해서 설명해드리면 진료실이나 병동에서는 고개를 끄덕이시고 대답하시는데, 같은 질문을 또 하시는 경우가 많아요.
환자, 보호자분들도 각자 여러 교육 과정을 거친 분들이신데 왜 그럴까 고민해봤어요. 우리가 만나는 환자나 보호자분들이 인체 구조나 기능에 대한 지식이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때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 우리도 해보자. 대학을 나온 이들이라면 의사의 설명은 알아들을 정도가 되도록 가르치자’.
그래서 의과대학 학생들이 아닌 여러 단과대학 학생들을 위한 교양 과목으로 ‘인간과 의학’이라는 수업을 개설했어요. 개강 전 수강 신청 인원을 파악해서 100명정도 수용 가능한 강의실에 들어섰는데, 강의실이 꽉 차서 복도에도 학생들이 서있더라구요. 그 이후 매 학기 개설했는데, 학기가 지날수록 더 많은 학생들이 수강신청을 하더니 최고로 많이 수강했던 학기에는 1,200명까지 기억해요. 당시 고려대학교 신입생 중 1/3은 제 수업을 들은 셈이죠.
그때 느낌점이 타 전공 학생들도 의학에 대해서, 우리 몸에 대해서 알고 싶다는 의지가 있는데 그것을 풀어줄 창구가 없다는 것이었어요. 그 이후 타 대학에서도 비슷한 과목, 과정이 개설되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반갑기도 했습니다.
Q5. 윤성기 전임의
학생들의 눈높이에 맞춰, 학생들이 원하는 강의를 준비하신 교수님의 경험이 느껴지네요. 교수님께서는 30년 이상 고려대학교 의료원에서 재직하시면서 여러 환자를 만나시고, 현재도 환자들의 건강을 위해 진료를 계속하고 있으신데요, 진료하시면서 가장 보람 있었던 일이 있으시다면 소개 부탁드립니다.
A5. 김형규 교수
1980년대 후반에 단백뇨가 있는 환자들이 여럿 찾아왔어요. 조직 검사를 해보니 당뇨병성 신증이라고 결과가 나오는데, 혈당은 정상이에요. 여러 검사를 해보니 당뇨병으로 결과가 수렴하는데, 혈당 수치는 그것이 아니에요. 참 이상한 병이라며 여러 문헌을 찾아보니 ‘이황화탄소(CS2) 중독’으로 확인됐어요.
레이온이라는 섬유 제작 과정에서 실을 뽑는 과정에서 이황화탄소를 씁니다. 이 환자들이 레이온을 만드는 회사의 노동자였는데, 특정 부서에서만 환자가 발생하는거에요. 그래서 저희는 이것이 직업병이라고 진단하고 학회에 보고하고, 환자에게도 이황화탄소 중독 진단을 내렸어요.
직업병이라는 진단이 나온 이후 그야말로 난리가 났습니다. 환자들은 회사에서 시위를 하며 보상을 요구했고, 회사에서는 병원과 환자를 상대로 부인하고, 정부에서는 여러 압력이 들어왔어요. 우리는 환자의 증상과 여러 요인을 살펴 진단을 내린 것인데 각자 이해관계가 얽혀서 어려워지더라구요. 직업병 판정을 받게 되면 등급에 따라 보상을 받게 되는데, 그 과정에서도 보상을 더 많이 받으려는 환자도 있고, 정부의 보상 기준에 맞추다보니 까다롭게 확인하는 경우도 생기니 여러 어려운 상황이 겹치기도 했죠.
나중에 알게 된 것인데 레이온 공장 노동자들의 이황화탄소 중독 직업병 인정 사례가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인정한 화학물질에 의한 직업병이었어요. 아주 큰 전환점이 된 것이죠. 노동 환경 개선이나 직업병에 대한 여러 기준들이 생기기도 했습니다.

Q6. 윤성기 전임의
교수님께서는 신장내과 분야의 대선배님이자 대한신장학회를 이끄신 분이시기도 한데요, 대한신장학회 관련하여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이 있으신가요?
A6. 김형규 교수
대한신장학회는 ‘신연구회’라는 이름으로 20~30명 정도 모여서 서울대학교 병원에서 한 달에 한번씩 모인 것이 시작이에요. 작은 연구 모임으로 시작했는데 해를 거듭하면서 규모가 커져서 지금의 신장학회가 된 것이죠.
초창기 함께 했던 많은 교수님, 선생님들도 떠오르고, 학회 사무실을 구하느라 서울 시내를 돌아다닌 것도 기억에 남습니다. 교통이 편하면서, 가격도 적당하고, 학회 사무국 업무를 잘 볼 수 있는 곳을 찾느라 세 달 정도 주말마다 부동산을 돌아다녀서 서초동에 학회 사무실을 구했습니다. 많이 힘들었지만 아주 재미있는 시절이었어요.
Q7. 윤성기 전임의
대한신장학회 윤리이사를 하시면서 투석전문의 제도를 만드시게 된 배경과 이유가 궁금합니다.
A7. 김형규 교수
혈액 투석은 원래 건강보험 적용이 안되었어요. 그러다 건강보험이 적용되면서 우후죽순 혈액 투석실이 생기기 시작한 것이죠. 그렇다보니 혈액 투석이나 신장학에 대한 전문성을 갖고 있는 신장학회에서 보기에는 적합하지 않은 의사들이 혈액 투석실을 운영하는 경우도 생기고, 그곳에서 문제가 발생하기도 했어요. 또 무료 투석에 대한 잡음도 심했죠.
그래서 학회에서는 투석 전문의 제도를 만들어서 투석 전문의만 혈액 투석을 할 수 있도록 제도를 만들었습니다. 제가 첫 번째 투석 이사였는데, 제도를 만들고 자리잡기까지 여러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그래도 지금 이렇게 잘 자리잡아서 환자분들이 건강하게 혈액 투석을 받으시는 모습을 보면 보람을 느낍니다.
Q8. 윤성기 전임의
COVID-19를 겪으면서 의사로서 더 많은 고민을 하게 되는 요즘입니다. ‘좋은 의사란 무엇인가’ ‘의사 윤리란 무엇인가’에 대해서도 고민하게 되는데요, 지금 시대의 ‘좋은 의사’를 꿈꾸는 후배들에게 조언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A8. 김형규 교수
2000년도 의약분업 때문에 각 병의원에서 대규모 파업이 있었어요. 제 기억으로 3,4개월 정도 파업을 했으니 굉장했죠. 저는 그 당시 대한의사협회 학술이사로 있으면서 파업을 결정하고 주도하는 역할을 한 것이죠.
파업이라는 것이 법적책임도 따르겠지만, 의사가 환자를 떠난다는 것이 엄청난 것이었어요. 어떤 순간에도 의사는 환자 곁에 있었는데, 그때 처음으로 공백이 생긴 것이죠. 의사가 환자를 두고 떠나는 것이 정당한가, 우리는 좋은 일을 위해 하는 일이지만 대중들의 시선은 그렇지 않았거든요. 의학 윤리라는 것이 정확하게 옳고 그름을 따지기가 참 어려운 것 같아요. 시대의 변화가 반영되기도 하구요. 이런 것들을 잘 살펴서 성장하는 의사가 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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