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신장학회(ERA) 2026 참관기 [26년 가을호]
편집부
news@ksnnews.or.kr | 2026-09-04 16:12:51
지난 6월 스코틀랜드 글래스고에서 개최된 제63회 European Renal Association(ERA) Congress에 참석했습니다. ERA는 세계 신장학 분야의 최신 연구와 임상시험 결과를 가장 먼저 접할 수 있는 대표적인 국제학회입니다.
올해 학회의 공식 슬로건은 "Challenge Your Thinking"였습니다. 익숙한 지식과 기존의 진료 패러다임을 넘어 새로운 근거와 기술을 통해 신장학의 미래를 다시 생각해 보자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실제 학회장에서는 이러한 슬로건에 걸맞게 새로운 치료제와 대규모 임상시험, 기초와 임상을 연결하는 다양한 연구들이 활발하게 소개되었으며, 신장학이 매우 빠른 속도로 발전하고 있음을 직접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이번 유럽 출장은 오랜만의 장거리 해외학회였습니다. 예전 같으면 낯선 도시에서 길을 찾고, 교통편을 알아보고, 식당을 찾는 일까지 모두 부담으로 느껴졌겠지만 이번에는 달랐습니다. Google Maps와 AI 서비스를 적극 활용하면서 대부분의 일정이 예상보다 훨씬 수월하게 진행되었습니다. 항공편 게이트 확인, 공항과 호텔 이동, 버스와 기차 이용, 식당 검색은 물론 간단한 번역까지 스마트폰 하나로 해결할 수 있었습니다.
다만 높아진 환율과 영국의 물가는 장거리 해외학회의 부담을 실감하게 하는 부분이었습니다. 식사와 숙박비를 결제할 때마다 예상보다 큰 금액에 놀라기도 했지만, 학회 기간이라 평소보다 가격이 오른 거라는 말에 약간의 수긍이 되기도 했습니다. 이번 학회 기간 동안 작은 스마트폰을 이용했지만, AI 기술이 연구뿐 아니라 해외학회 참석 방식까지 바꾸고 있다는 사실을 몸소 경험한 출장이었습니다.
처음 방문한 글래스고는 예상보다 훨씬 따뜻한 도시였습니다. 영화 Braveheart에서 보았던 멜 깁슨때문인지 스코틀랜드 사람들은 거칠고 강인할 것이라는 이미지와 위스키로 대표되는 문화 때문인지, 방문 전에는 왠지 다소 무뚝뚝하고 남성적인 분위기의 도시일 것이라는 선입견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생각은 도착한 첫날부터 달라졌습니다. 밤늦게 공항에서 시내로 들어가는 버스를 탔는데, 버스 기사가 내릴 정류장뿐 아니라 숙소까지 어떻게 찾아가야 하는지 친절하게 알려주었습니다. 낯선 도시에 늦은 시간 도착해 조금 긴장했던 터라 이러한 작은 배려가 더욱 인상 깊게 느껴졌습니다.
스코틀랜드 특유의 날씨는 하루에도 몇 번씩 맑았다가, 비가 내리고, 다시 햇볕이 비치는 등 매우 변화무쌍했습니다. “하루에 사계절을 경험한다”라는 말을 자주 들었는데, 실제로 그 표현이 과장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변화무쌍한 날씨와 달리 사람들의 친절함은 한결같았고, 여행객을 배려하는 문화 덕분에 글래스고는 예상보다 훨씬 편안하고 따뜻한 도시로 기억에 남았습니다.
학회 일정 중 잠시 시간을 내어 글래스고 대학교(University of Glasgow)를 방문했습니다. 의사에게 ‘Glasgow’라는 이름은 도시보다도 Glasgow Coma Scale(GCS)로 먼저 익숙한 이름입니다. 응급실과 중환자실에서 너무나 익숙하게 사용하는 의식수준 평가 방법이 이곳 글래스고 대학교에서 개발되었다는 사실 때문에 이전부터 한 번 방문해 보고 싶다는 생각이 있었습니다.
글래스고 대학교는 1451년에 설립된 오래된 대학답게 캠퍼스에 들어서자마자 오랜 역사와 전통이 느껴졌습니다. 특히 고딕 양식의 오래된 건물과 회랑을 걷다 보니 현대적인 우리나라 대학 캠퍼스와는 전혀 다른 분위기가 인상적이었습니다. 오랜 시간 동안 수많은 학생과 연구자들이 이곳에서 공부하고 새로운 지식을 만들어 왔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니, 단순히 오래된 건물을 구경하는 것과는 또 다른 느낌이 들었습니다. 의학을 공부하면서 수없이 사용했던 Glasgow Coma Scale이 시작된 도시와 대학을 직접 걷고 있다는 점도 개인적으로는 작은 즐거움이었습니다.
캠퍼스 내 박물관도 둘러보았습니다. 오랜 역사를 가진 대학이라 상당히 큰 규모의 의학 관련 전시를 기대했는데, 생각보다는 소박해서 약간 아쉬운 마음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화려한 관광 명소를 둘러보는 것과는 달리, 학회가 열린 도시의 대학을 직접 찾아가 그 역사와 분위기를 느껴보는 것도 해외학회에서 가질 수 있는 또 하나의 즐거움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영국 음식은 먹을 것이 많지 않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어서 출발 전부터 약간의 걱정이 있었습니다. 실제로 현지에서 방문한 해산물 식당은 기대 이상으로 맛있었지만, 영국을 대표하는 음식이라는 fish and chips는 개인적으로 다소 실망스러웠습니다. 유명한 음식이라고 해서 반드시 내 입맛에도 맞는 것은 아니라는 당연한 사실을 다시 한번 느꼈습니다.
학회 기간 중에는 미쉐린 가이드에 소개된 식당도 찾아가 보았습니다. 기대가 컸지만 생각만큼 특별하지는 않았고, 오히려 큰 기대 없이 찾은 작은 식당이 더 만족스러운 경우도 있었습니다. 음식의 맛은 결국 개인의 취향과 익숙한 식문화에 따라 다르게 느껴질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한편 해외학회 기간에 익숙한 음식을 먹을 수 있다는 것은 생각보다 큰 위안이 되었습니다. 글래스고에 예상보다 많은 한식당이 있다는 점도 놀라웠고, 멀리 스코틀랜드에서도 한국 음식과 K-Culture의 인기를 체감할 수 있었습니다. 다만 간판은 한식당이지만 실제로는 중국인이나 다른 아시아계 사람들이 운영하는 경우도 적지 않았고, 음식의 맛과 메뉴가 기대와 다소 다른 곳도 있었습니다. 한식이 세계적으로 널리 알려지고 있다는 반가움과 함께, 우리가 생각하는 한식과 현지에서 받아들여지고 변형되는 한식에는 차이가 있을 수 있다는 점도 흥미로웠습니다. 한국 음식이 그리워 한식당을 찾는 경우라면 방문 전에 Google 리뷰 등을 통해 실제 메뉴와 음식 사진을 미리 확인해 보는 것도 실망을 줄이는 방법일 것 같습니다.
학술적으로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Late-breaking Clinical Trial 세션이었습니다. 과거에는 연구가 모두 종료된 후 최종 결과를 발표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지만, 이번 ERA에서는 현재 진행 중인 대규모 임상시험의 중간 결과(interim analysis)가 메인 세션에서 활발하게 발표되었습니다. 발표 시작 전부터 강연장은 빈자리를 찾기 어려울 정도로 많은 연구자들이 모여, 신장질환에서 치료제에 대한 기대감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이러한 모습을 보며 신장학 분야에서도 새로운 치료제 개발과 대규모 임상시험이 매우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으며, 연구 결과가 빠르게 실제 진료 현장으로 연결되고 있음을 실감할 수 있었습니다.
특히 이번 학회에서 가장 큰 관심을 받은 연구 가운데 하나는 finerenone이었습니다. 최근 발표된 임상시험 결과는 비당뇨 만성콩팥병 환자에서도 우수한 신장 보호 효과를 보여주었으며, 단백뇨 감소와 신기능 저하 억제 효과 역시 매우 인상적이었습니다.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만성콩팥병 치료는 질환의 진행을 최대한 늦추는 것이 목표였다면, 이제는 SGLT2 억제제에 이어 비스테로이드성 mineralocorticoid receptor antagonist(MRA)까지 더해지면서 적극적으로 신장과 심혈관을 보호하는 시대가 열리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최근 몇 년 사이 연이어 발표되는 긍정적인 대규모 임상시험들은 신장내과 의사들에게 큰 기대를 안겨주고 있으며, 앞으로의 진료지침에도 중요한 변화를 가져올 것으로 생각됩니다.
고혈압 치료 분야의 변화도 매우 인상적이었습니다. 오랫동안 ACE 억제제, ARB, 칼슘통로차단제, 이뇨제 등 기존 약제를 중심으로 치료가 이루어졌던 고혈압 분야에 최근 새로운 작용기전의 약제들이 잇따라 등장하고 있습니다. 특히 저항성 고혈압 환자를 대상으로 한 endothelin receptor antagonist인 aprocitentan과 aldosterone synthase inhibitor 계열의 약제들이 최근 ‘New England Journal of Medicine’에 발표되면서 큰 관심을 받고 있습니다.
혈압 조절이 어려운 환자들에게 새로운 치료 옵션이 제시되고 있다는 점은 매우 고무적이며, 앞으로는 환자의 병태생리에 따라 다양한 기전의 약제를 조합하여 사용하는 맞춤형 혈압 치료가 더욱 활성화될 것으로 기대됩니다. 이러한 변화는 만성콩팥병 환자의 심혈관 및 신장 보호 전략에도 중요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생각됩니다.
이번 학회에서 또 하나 인상적이었던 점은 신장질환을 바라보는 시각이 빠르게 확장되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과거 만성콩팥병 치료에서는 혈압과 단백뇨를 조절하고 신기능 저하를 늦추는 것이 가장 중요한 목표였습니다. 그러나 최근에는 신장질환을 당뇨병, 비만, 심부전 및 심혈관질환과 서로 밀접하게 연결된 질환으로 이해하려는 흐름이 뚜렷해지고 있습니다.
SGLT2 억제제를 시작으로 finerenone과 같은 새로운 약제들이 등장하면서 하나의 약제가 혈당이나 혈압과 같은 특정 지표만을 개선하는 것이 아니라 신장과 심혈관계를 동시에 보호하는 효과를 기대하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특히 신장내과 의사가 환자의 심혈관 및 대사 위험을 함께 평가하고 치료해야 한다는 점이 여러 세션에서 강조되고 있었습니다. 이러한 변화는 앞으로 신장내과의 진료 영역이 더욱 넓어질 것이라는 생각을 갖게 했습니다.
이번 학회에서는 제가 수행한 연구를 e-poster로 발표하는 기회도 가졌습니다. 연구 주제는 만성콩팥병에서 미세아교세포(microglia)와 별아교세포(astrocyte)의 변화가 뇌 기능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한 연구였습니다. 발표를 준비하는 과정에서는 긴장도 되었지만, 여러 나라 연구자들과 연구 결과를 공유하고 다양한 의견을 들을 수 있었던 시간은 매우 뜻깊었습니다. 특히 만성콩팥병을 단순한 신장질환이 아니라 뇌와 심혈관계를 포함한 전신질환으로 이해하려는 최근 연구 흐름을 함께 확인할 수 있었고, 연구를 바라보는 새로운 시각도 얻을 수 있었습니다.
이번 ERA를 통해 가장 크게 느낀 점은 신장학이 지금 어느 때보다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새로운 약제가 빠르게 개발되고 있고, 진행 중인 임상시험 결과들이 실시간으로 공유되며, 기초연구와 임상연구의 간격도 점차 좁아지고 있습니다. 과거에는 신장내과가 변화가 더딘 분야라는 인식도 있었지만, 이제는 오히려 다양한 혁신 치료제가 가장 활발하게 개발되는 분야 중 하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한편으로는 연구 환경도 크게 달라지고 있습니다. AI는 논문 검색과 번역을 넘어 연구자의 해외 활동과 국제 협력까지 지원하는 중요한 도구가 되었으며, 앞으로 연구자들에게 AI 활용 능력 또한 중요한 경쟁력이 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글래스고에서의 며칠은 단순한 해외 출장이 아니라, 빠르게 변화하는 신장학의 현재와 미래를 직접 확인하는 소중한 시간이었습니다. 수준 높은 학술 토론과 활발한 임상연구 발표를 통해 신장학이 새로운 도약의 시기를 맞이하고 있음을 실감할 수 있었고, 국제학회가 최신 지식을 공유하는 것을 넘어 연구자 간 협력과 새로운 아이디어가 시작되는 중요한 장이라는 점을 다시 한번 느꼈습니다. 이번 ERA에서 얻은 경험과 통찰은 앞으로의 연구와 진료를 더욱 발전시키는 소중한 밑거름이 될 것으로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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