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유아 / 가톨릭의대 대전성모병원 신장내과
연수에서 돌아와 다시 도돌이표인 바쁜 일상에 들어서니, 지난 1년이 꿈처럼 아득하게 느껴집니다. 연수를 준비하면서 고민할 때, KSN news에서 보았던 여러 선생님들의 해외연수기가 많은 도움이 되었습니다. 대부분 연수처를 정할 때 미국을 먼저 생각하기 때문에 일본으로의 해외연수가 생소하게 느껴질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제가 연수를 준비하던 때가 COVID-19 대유행이 진정세로 접어들며 점차 해외로 나가는 경우가 늘었지만, 여전히 국내로 연수를 가시는 선생님들도 많았습니다.
저도 사정상 가족과 함께 해외로 나가기 어려운 상황이었지만, 그래도 국내보다는 해외연수가 좋겠다는 생각으로 연수처를 찾다가 일본을 선택하게 되었습니다. 일본은 비행기로 2시간 거리로 가깝고, 자세히 들여다보면 다르지만 같은 아시아 문화권을 공유하고 있다는 면에서도 심리적인 부담이 덜하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또한, 여자 혼자 지내기에 안전하고 영어가 유창하지 않더라도 크게 불편하지 않습니다. 저와 비슷한 상황에서 연수를 고민하시는 선생님들께 도움이 되기를 바라며 저의 경험을 나누고자 합니다.

저는 도쿄대학교(University of Tokyo)의 만성콩팥병 병태생리학연구소(Division of CKD pathophysiology)로 2023년 9월부터 2024년 8월까지 연수를 다녀왔습니다. 저는 미국으로 연수를 갈 생각이 없었기 때문에 연수를 계획하면서부터 일본 혹은 국내 연수처를 염두에 두고 알아보았습니다. 지역을 우선 정한 것이지만, 소소하게나마 기초연구를 하고 있던 터라 특히 기초연구로 꾸준히 성과를 내고 있는 대학을 중심으로 이력서와 함께 메일을 보냈습니다.
답장이 없을까 걱정을 많이 했는데, 도쿄대학교의 Masaomi Nangaku 교수님으로부터 6시간 만에 추천서를 요청하는 답장을 받아 생각보다 쉽게 연수처를 정할 수 있었습니다. 연수를 가기 1년 전에 메일을 보냈기에 이후에는 zoom으로 Nangaku 교수님과 기초실험을 중점적으로 하는 Reiko Inagi 교수님과 미팅하며 천천히 준비를 하였습니다. 일본은 비자 발급이 비교적 수월하고 한인 부동산이 많아서 집도 국내에서 미리 해결하고 들어갈 수 있어 준비 과정이 순조로웠습니다. 가기 전 가장 큰 걱정은 일본어에 대한 부분이었습니다. 출국 전에 일본어를 공부할 시간이 없어 일본어 책과 인터넷 강의만 결제해놓고 차일피일 미루다 연수를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제가 다녀온 도쿄대학교 신장내과 만성콩팥병 병태생리학연구소의 Reiko Inagi 교수님은 신장에서의 소포체 스트레스(ER stress)가 신장질환의 발생과 진행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주로 연구하고 계십니다. 거시적인 신장 병리보다는 세포 내 소기관의 역할에 대하여 관심을 가지고 있으며, 최근에는 소포체와 그 외의 다른 세포소기관의 연결고리를 하는 물질을 찾는 연구에 주력하고 있습니다. 단일한 신장질환을 중심에 두고 질환에 미치는 병태생리를 찾는 것이 아닌, 신장 세포의 기본 단위에서 질병 발생의 원인이 되는 세포 내 변화에 관심을 가지고 이러한 병태생리를 각 질환에 적용하는 실험을 하고 있습니다.
저는 1년간 신장 근위관 세포 내에서 세포질을 추출하여 특정 소포체 단백을 모으고 이와 연관이 있는 세포 내 단백에 대해 proteomics로 분석하는 연구를 진행했습니다. 연구의 개념은 간단했지만 오랜만에 혼자 실험을 진행하게 되니 연구의 본 궤도에 오르기까지 시간이 걸렸습니다. 실험 과정에서도 기본적인 것부터 다시 검토하고 넘어가야 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연구소 내 실험실 직원분들과 대학원생들의 도움으로 차근차근 연구를 이어갈 수 있었습니다.
도쿄대학교 신장내과는 제가 있었던 만성콩팥병 병태생리학연구소를 포함해 Nangaku 교수 중심으로 약 20-30명의 교수와 대학원생이 연구에 매진하고 있었습니다. 이들은 주 1회 랩미팅을 통해 연구의 진척사항을 공유하고 토론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랩미팅에서 낮은 연차의 대학원생부터 교수까지 서로 격의 없이 토론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처음에는 랩미팅이 일본어로만 진행되어 알아듣기 어려웠지만, 해외에서 온 방문 교수 숫자가 많아지면서 영어로 전환되었고, 이는 일본 사람들이 영어를 잘 하지 못할 것이라는 제 편견을 깨 주었습니다. 연구 주제는 신장에만 국한되지 않고 신장 질환에서 근육이나 뇌 등의 다른 장기를 보는 기초 실험으로 범위가 넓었습니다. 기초실험이실제로 제약회사 연구소와 연계되는 연구의 체계적인 연속성을 확인할 수 있는 기회도 있었습니다. 또한, Nangaku 교수님이 ISN에서 중추적인 역할을 맡고 있어 해외의 유명한 연자들과 직접 만나는 기회도 가질 수 있었습니다.
도쿄는 이미 많은 분들이 여행이나 학회로 한 번쯤 가 보셨을 것입니다. 교토처럼 전통적이지는 않지만, 현재와 옛날이 조화롭게 공존하는 도시로, 이제는 해외여행객이 많아 북적이는 국제적인 도시입니다. 저도 이전에 몇 번 방문한 적이 있지만, 1년을 살면서 느낀 도쿄는 또 다른 매력이 있는 도시였습니다. 1년 동안 있으니 대표적인 관광지가 아닌, 현지 사람들이 자주 가는 곳들을 돌아다닐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가을에는 단풍, 겨울에는 라이트업, 봄에는 벚꽃 등 계절에 맞춰 도쿄를 둘러보는 재미가 있었습니다.

실험을 일찍 마치고 근처 미술관을 둘러보기도 하고, 주중에 여행 계획을 세워서 주말에 지하철을 타고 가보고 싶은 동네로 여행을 떠나기도 했습니다. 연말이나 골든 위크에는 가족과 함께 도쿄 근교에 가거나, 도쿄에서 벗어나 료칸에서 온천을 즐기는 시간도 가졌습니다. 한국과 가까워 주말 가족 행사가 있을 때 잠시 한국에 다녀오거나, 가족과 친구들이 도쿄에 놀러와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었습니다. 돌아보니 연수에 있던 1년이 정말 소중한 시간이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연수 오기 전에는 일본어에 대한 두려움이 많았지만, 최근에는 해외여행객이 많아져 영어로 소통할 수 있는 곳들이 많아졌고, 파파고 같은 통역 앱도 잘 통하는 편이라 이런 두려움은 사라졌습니다. 실험실에서도 거의 영어로 의사소통을 했기 때문에 오히려 1년 동안 영어 사용에 익숙함이 생겼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상생활에서는 일본어가 필요했고, 일본이 아날로그적인 면이 많아 불편한 점도 있었지만, 주변 대학원생들의 도움 덕에 무난히 지낼 수 있었습니다. 우리에게 이미 친숙한 음식이 많았고, 마트에서 완전한 한국식은 아니지만 한국 음식도 구할 수 있었습니다. 한국식 김치가 그리울 때는 한국에서 오는 인편으로 김치를 공수해 먹기도 했습니다. 또한, 연수 기간이 엔화가 저렴한 시기라 여유 있게 생활할 수 있었습니다. 시차가 없다 보니 실시간으로 한국 소식을 들을 수 있어 타국에 있다는 느낌이 들지 않을 때도 있었습니다.
제가 연수에 있던 1년 동안 우리나라 의료계는 많은 변화를 겪었습니다. 타지에 있으면서도 항상 국내 소식에 귀 기울였고, 일본 교수들도 우리나라 상황에 대해 걱정스럽게 물어보곤 하였습니다. 어려운 상황이지만 잘 이겨내서 우리나라 의료계가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가길 진심으로 바랍니다. 마지막으로 제가 도쿄에 머무르는 동안 의정사태로 고생하신 대전성모병원 신장내과 교수님들께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 도쿄대학교 정문부터 야스다 강당까지 늘어선 은행나무와 야스다 강당 앞 큰 고목나무 아래에서 커피를 마시면서 앉아있던 순간이 떠오릅니다. 또, 어느 봄날, 집 근처 칸다 강에 흐드러지게 핀 벚꽃을 따라 한참을 걸었던 그 길도요. 제 짧은 연수기가 연수를 준비하시는 선생님들께 도움이 되기를 바라며, 도쿄로 연수를 준비하시는 분이 있다면 언제든 연락 주시면 성심껏 답변 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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